대한민국에서 SNS를 한다는 것은 (4)
사라가 윙크를 입양한 지 벌써 두 달이 흘렀다.
그리고 한민철의 말이 맞았다는 것도 인정했다. 윙크는 정말 순했다. 배변 실수를 한 적도 없고, 단 한 번도 집을 어지른 적도 없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조용히 꼬리를 흔들며 사라를 반갑게 맞아줬다. 윙크는 꽤나 영리했고 사라의 생활패턴을 금방 파악했다. 사라의 생활에 방해가 되는 일이 전혀 없었다.
윙크와 가까워질수록 사라는 sarah.j와는 확실히 멀어졌다. 그리고 그 덕분에 사라의 하루가 여유로워졌다.
불과 세 달 전에 사라라면 sarah.j 계정을 위해 언제, 어디서 셀카를 찍어야 할지 모르니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진한 화장을 하고, 고데기로 헤어 세팅을 하고, 화려한 옷을 골랐겠지만 이젠 한 시간이나 더 자고 일어나도 충분했다. 7시에 기상해 잠옷과 운동복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옷을 대충 걸치고 윙크와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한다. 산책을 마치면 무난한 비즈니스 캐주얼 옷에 단정한 헤어스타일, 선크림에 립만 바르고 출근하니 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로웠다.
하지만 이런 평화로운 삶에서도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윙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들. 딱히 말을 얹는 사람은 없지만 윙크의 얼굴을 보고는 흠칫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윙크는 그런 반응들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산책을 할 때마다 오히려 기가 죽는 듯했다.
사라는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산책을 중단할 수도 없었고 퇴근시간도 일정하지가 않아서 산책 시간을 밤으로 바꿀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안대를 착용하면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는 업무 중에 내일 새벽에 도착할 수 있는 강아지용 안대를 주문했다.
다음 날 새벽, 7시보다도 더 일찍 눈이 떠진 사라는 도착한 강아지용 안대를 윙크에게 씌워줬다. 윙크가 워낙 잘생겼기도 했지만 안대를 씌우니 더 멋진 것 같았다. '너무 잘 어울린다, 윙크야!' 하고 윙크를 꼭 껴안았다. 그 순간 사라 마음 한편에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자리 잡았다. 안대도 잘 어울리고 아무 문제도 없지만, 이게 진짜 해결책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사라를 답답하게 했다.
안대를 끼고 나간 첫 산책. 확실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 게 느껴졌다. 윙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멋지다' 하는 듯했다. 사라는 기분이 좋았다. 윙크도 훨씬 더 당당하게 걷는 것 같았다. 그래, 이게 해결책이 맞나 보다. 하며 사라는 집으로 돌아와 윙크의 안대를 벗겼다.
다음 날, 산책을 나가려고 안대를 꺼낸 사라는 윙크를 찾았다. 이 시간이면 원래 현관 중문 앞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을 윙크인데 어디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윙크야! 부르자 어디선가 슬그머니 나와 사라의 앞에 앉았다.
'어디 갔었어? 산책 가자. '하고 안대를 씌우려는 순간 윙크가 처음으로 반항했다. 안대를 쓰기 싫은 모양이었다. 이상했다. 어젠 분명 안대 낀 채로 하는 산책을 좋아했는데 말이다. 안대를 씌우려는 자와, 안대를 거부하는 자의 치열한 사투 중 출근시간이 다가왔다. 처음으로 사라와 윙크가 아침 산책을 하지 못했다.
출근하는 내내, 업무 하는 내내, 윙크가 왜 그랬을까 생각뿐인 사라에게 팀 막내가 말을 걸어왔다.
"사라 님, 윙크 잘 지내요? 사라 님이 이젠 SNS 안 하셔서 윙크를 볼 수가 없네요. 워낙 사라 님이 잘 돌보고 계시겠지만. "
"아, 네네. 윙크 잘 지내요. 그리고 얼마나 순한지 사고 한 번 안 쳐요. 언제 집에 초대할게요. 윙크 보러 와요."
"사실 어제 우연히 사라 님이 강아지용 안대 주문하시는 거 봤어요. 사람들은 윙크를 낯설게 느껴도 윙크는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고 재밌어할 거예요. 뭐, 그냥 그렇다고요. "
아, 하필 주문하는 걸 봤구나. 그렇지만 사람들 시선에 윙크가 기가 죽어 산책을 즐기지 못한다고 말하려는데, 순간적으로 그건 장사라 본인의 추측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윙크가 아닌 장사라가 사람들 시선을 신경 쓰는 거란 생각.
"아, 네. 아무튼 언제 한번 보러 와요. 잘 지내니까요. 저 화장실 좀. "
사라는 이내 부끄러워졌다. 혹시라도 본인의 생각이 읽혔을까 봐 얼른 자리를 떠났다. 안대를 생각해 내고, 안대를 씌워주고, 안대를 끼고 산책을 나간 것. 그 모든 과정에서 윙크의 의사는 없었다. 오늘 아침 처음으로 안대가 싫다며 거부했는데 씌우려고 했던 게 후회됐다.
사실은 장사라 본인이 외눈박이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는 게 신경 쓰였던 거면서. 사실은 장사라 본인이 사람들 시선이 무서웠던 거면서.
퇴근 후, 사라는 오랜만에 sarah.j의 계정을 활성화시켰다. 할 말이 생겨서다. 노트북을 켜고 sarah.j 계정에 장문의 글을 써 내려갔다.
안녕하세요. sarah.j 장사라입니다. 바디프로필 이슈 이후로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뒤늦은 해명이지만, 저 약 먹고 살 뺀 거 맞고요. 근육도 포토샵으로 그린게 맞습니다. 당시엔 '이게 그렇게 잘못인가?'생각했지만 이제야 이슈 본질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예쁘다'라는 반응에 중독되어 거짓된 정보를 수차례 전달 드린 점 죄송합니다.
뿐만 아니라 파인다이닝, 골프, 호캉스, 수영장, 해외여행, 명품 하울 등 업로드한 게시글들 중에 제 스스로가 진심으로 만족하고 즐거웠던 순간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보여지기 위한 삶'을 업로드했어요.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던 털털함 또한 거짓입니다. 인플루언서들 중엔 없던 콘셉트여서 잡았던 계정 방향입니다.
이렇게 보니 sarah.j 계정은 제 진심도 없고, 진정한 추억도 없는 예쁜 쓰레기통 같네요.
갑자기 나타나 이런 글을 올리는 이유가 궁금하시겠지요. 최근 가족이 생겼습니다.
'유기견 출신'이고 '외눈박이'이며 '믹스견'입니다. 이름은 '윙크'입니다. 윙크를 설명하기 위한 수식어는 많습니다. 그러나 대표적인 수식어들이 부정적이라 최대한 사용을 지양하고 있습니다.
모든 단어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하지만 굳이 수식하거나 지칭하지 않아도 가치나 뜻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 이 세상에는 참 많더라고요.
윙크가 '유기견 출신'이라는 건 어디 가서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내 새끼가 버려졌던걸 왜 알려야 하나 싶고, 입양했다고 칭찬받을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또한, '믹스견'이라는 건 품종견만 찾는 사람들에게나 중요한 거라 저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외눈박이'라는 부분은 신경 쓰고 있더라고요. 윙크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이에요. 제가 sarah.j 계정을 운영하며 좋아요 수, 댓글 수에 신경 쓰던 버릇을 그대로 윙크에게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윙크는 그냥 윙크입니다. 한쪽 눈으로만 살아가는 대신 매일 더 섬세하게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요. 그러나 제 좁은 시야로는 그 포인트를 짚지 못했었습니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윙크'에만 치중하느라 강아지용 안대도 구매했었고요.
부끄럽습니다.
윙크 덕분에 제가 얼마나 사람들 시선을 신경 쓰며 인생을 허비하고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회사에서도 욕먹을까 전전긍긍하며 살고, 출퇴근할 때도 지하철 옆 사람에게 제 가방이 닿아서 그 사람 기분이 나쁘진 않을까 등 하루종일 다른 사람들 신경 쓰느라 제 마음은 신경 쓰지도 않고 살았더라고요.
이젠 그렇게 살지 않기로 했습니다.
15만 명의 팔로워에게 많은 좋아요 수와 많은 댓글을 받기 위해 전시한 것이 제 행복이 아닌 제 불행이었다는 걸 알았거든요. 여러분이 보내주신 반응 하나하나에 울고 웃던 저는 행복했던 게 아니라 불행했었다는 것을요.
윙크 덕분에 깨달은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여러분께 받은 관심을 이젠 저와 윙크가 감히 나눠 가지려 합니다. 이 글이 제 인생에서 마지막 SNS 글이 될 것 같네요. 모두들 건강하세요.
글을 마무리 한 사라는 마지막 SNS 게시물을 업로드했다. 그리고 바로 노트북과 핸드폰에서 SNS 어플을 지웠다. 사라의 마지막 글에 어떤 댓글들이 달릴지 이젠 정말로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윙크의 안대도 쓰레기통에 버렸다.
천하장사 장사라든, sarah.j 장사라든, 모든 순간의 장사라가 장사라의 일부분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온전한 장사라로 살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이제 있는 그대로의 사라와 윙크의 솔직한 미래만 남았다.
꾸며낸 나 자신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상만사 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그래야 이 복잡한 인생굴레로부터 잠시라도 독립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 해답과 해방감을 윙크의 온기를 통해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