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우주를 처음 본 사람
2024년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공상 과학 드리마 '삼체'가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약 400년 후 지구에 도착할 예정인 삼체인들은 태양이 3개인 행성에 거주하고 있다. 지구의 인류가 그들과 교신을 하면서 일어나는 내용으로 우주와 혼돈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미 푸앵카레는 이러한 복잡한 이론을 발견한다. 드라마의 내용을 그의 이론으로 명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삼체이론의 출발점은 같다. 그것은 바로 예측 불가능이다.
19세기 말의 과학은 거의 완성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믿어졌다. 뉴턴 역학은 천체의 운동부터 지상의 물체에 이르기까지 자연 현상을 정밀하게 설명했고, 우주는 거대한 시계장치처럼 이해되었다. 충분한 정보와 계산 능력만 있다면 미래는 예측 가능하다는 확신, 즉 결정론은 과학이 세계에 부여한 가장 강력한 약속이었다. 이 확신의 중심에서 조용히 균열을 발견한 인물이 바로 앙리 푸앵카레다.
푸앵카레는 천문학적 문제, 특히 세 개의 천체가 중력으로 상호작용하는 ‘삼체 문제’를 연구하던 중 뜻밖의 결론에 도달한다. 방정식은 명확했고 법칙은 분명했지만, 계산 결과는 안정되지 않았다. 초기 조건의 아주 미세한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결과를 전혀 다른 궤도로 이끌었다. 이는 단순히 계산이 어렵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연이 법칙을 따르면서도 인간의 예측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즉 질서 속에 숨어 있는 불확실성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이 발견은 훗날 ‘혼돈 이론’으로 불리게 되지만, 푸앵카레의 관심은 기술적 성취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이 현상이 과학의 실패가 아니라, 과학이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는 계기라고 보았다. 법칙이 존재한다고 해서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은 세계를 완전히 소유하지 못하며, 다만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푸앵카레의 과학관은 이 지점에서 철학으로 깊어간다. 그는 과학 이론을 자연의 진리를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과학이란 무수한 사실들 사이에서 의미 있는 관계를 선택하고 구성하는 인간 정신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공간과 시간, 기하학적 구조조차도 자연이 강요한 절대적 실체가 아니라,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하기 위해 인간이 선택한 약속에 가깝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참이어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편리하기 때문에 사용된다는 그의 주장은 과학적 객관성에 대한 통념을 근본에서 흔든다.
이러한 관점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중요한 사유적 토대를 제공했지만, 두 사람의 차이는 분명하다. 아인슈타인이 이를 물리 이론으로 완성했다면, 푸앵카레는 끝까지 “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라는 질문을 붙들었다. 그의 관심사는 자연 그 자체보다, 자연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사고 방식이었다.
푸앵카레는 또한 직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논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정당화할 뿐이며, 새로운 발견은 직관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수학적 창조는 계산의 누적이 아니라, 질서와 혼돈 사이에서 떠오르는 통찰의 순간에서 탄생한다. 이 점에서 그의 사유는 예술의 창작 과정과 닮아 있다. 악보는 정해져 있지만 연주는 매번 달라지듯, 자연 법칙은 동일해도 세계의 모습은 언제나 새롭게 나타난다.
오늘날 우리는 알고리즘과 데이터가 미래를 예측해 줄 것이라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점점 더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다. 계산 능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사회와 인간의 행위는 오히려 예측 불가능해졌다. 이 역설적인 상황을 이미 한 세기 전에 감지한 사람이 푸앵카레다. 그는 과학의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인간의 자유와 선택의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지 않기에, 우리는 사유하고 창조하며 책임질 수 있다.
푸앵카레는 예측 가능한 우주를 무너뜨린 사람이 아니다. 그는 열려 있는 우주, 그리고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 가는 인간을 처음으로 사유한 과학자였다. 그의 과학은 확실성을 약속하지 않지만, 대신 겸손과 상상력이라는 더 깊은 지적 태도를 요구한다. 그 점에서 푸앵카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사상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