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 문명을 거부하다

by Polymath Ryan


1888년 겨울, 프랑스 남부 아를의 '노란 집'에는 두 명의 화가가 살고 있었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이다. 고흐는 예술 공동체라고 믿었고, 고갱은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하는 임시 거처로 생각하며 동상이몽은 시작되었다. 결국 이 공동체는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고 마무리 된다. 이 장면은 성격의 차이가 아닌 예술의 갈라지는 하나의 상징으로 남는다. 고흐와 고갱의 갈라짐은 분명했다. 고흐는 고통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으려 했다면 고갱은 문명 자체에서 벗어나야 예술의 본질을 찾을 수 있다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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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폴 고갱의 예술은 한 화가의 개성적 스타일을 넘어, 근대 이후 인간이 반복적으로 품어온 하나의 욕망을 응축한다. 그것은 문명을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 다시 말해 ‘탈문명’에 대한 갈망이다. 고갱은 이 욕망을 가장 극단적으로 실천한 예술가였으며, 그의 삶과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이 불편한 질문을 우리 앞에 남긴다.


고갱은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급속히 확장되던 19세기 말의 산물이다. 그는 증권 중개인으로 안정된 삶을 살았지만, 그 안정성은 곧 감각의 마비와 삶의 공허로 변해갔다. 효율과 생산성, 합리성이라는 문명의 언어 속에서 인간은 점점 계산 가능한 존재가 되었고, 고갱은 그 세계에서 예술이 질식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의 화가로의 전향은 성공을 포기한 선택이 아니라, 문명이 제시한 삶의 모델을 거부한 선언이었다.


인상주의를 거쳐 고갱이 도달한 지점은 ‘보이는 세계’가 아니라 ‘살아야 할 세계’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는 빛의 순간보다 기억과 신화를, 현실의 정확성보다 상징의 힘을 선택했다. 색은 자연을 묘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감정과 세계관을 드러내는 언어가 되었고, 회화는 더 이상 창문이 아니라 사유의 공간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 고갱은 근대적 재현의 논리로부터 이탈한다.


그의 탈문명 욕망은 결국 타히티라는 장소로 향한다. 고갱에게 타히티는 단순한 식민지가 아니라, 문명이 아직 모든 것을 규정하지 않은 공간, 혹은 그렇게 믿고 싶었던 장소였다. 그곳에서 그는 인간의 몸과 자연, 신화가 분리되지 않은 삶을 상상했다. 그의 그림 속 타히티인은 실제 인물이라기보다 ‘문명 이전의 인간’이라는 상징에 가깝다. 이는 고갱 개인의 구원이자, 동시에 서구 문명이 상실했다고 믿은 어떤 전체성에 대한 향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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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탈문명 욕망은 모순을 안고 있다. 고갱은 문명을 비판했지만, 그가 바라본 타히티는 서구인의 시선으로 재구성된 낙원이었고, 현지 문화는 그의 예술적 욕망을 위한 배경으로 소비되었다. 탈문명을 꿈꾸는 시도조차 문명의 권력 구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고갱의 예술을 오늘날 더욱 복합적으로 만든다.


그럼에도 고갱이 던진 질문은 현대 사회에서 다시 살아난다. 디지털 기술, 과잉 연결, 끊임없는 자기 관리 속에서 현대인은 또 다른 형태의 문명 피로를 겪고 있다. 자연으로의 회귀, 느린 삶, 미니멀리즘, 로컬리티에 대한 관심은 모두 고갱이 품었던 탈문명 욕망의 변주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더 발전했지만, 여전히 묻는다. 이 삶은 인간적인가.


고갱은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문명을 떠나려는 충동 자체를 예술로 남겼다. 그의 그림이 여전히 논쟁적이고 불편한 이유는, 그 탈주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욕망이 지금도 우리 안에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갱은 말한다. 문명을 떠날 수는 없을지라도, 문명을 의심할 수는 있다고. 그 질문이야말로 그의 예술이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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