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
2025년의 마지막 날, 질문해본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 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
겉보기에는 정반대의 명령처럼 보인다. 하나는 삶을 멈추게 하는 경고 같고, 다른 하나는 쾌락을 재촉하는 초대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두 문장은 서로를 부정하기보다, 인간의 시간을 완성하는 두 개의 축에 가깝다.
Memento mori
고대 로마에서 메멘토 모리는 권력의 정점에 선 자에게 던져졌다. 승리한 장군의 뒤에서 속삭여졌던 이 말은, 영광이 절정에 이를수록 몰락 또한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여기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한계를 인식하게 하는 기준선이다. 인간은 이 선을 넘어설 수 없기에, 그 안에서의 선택과 태도가 중요해진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죽음을 매일 사유했다. 세네카는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 있다”고 말한다. 메멘토 모리는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규정하는 조건이다. 죽음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일 때, 인간은 외부의 평가와 허영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질서에 집중할 수 있다. 죽음을 기억하는 행위는 삶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한다.
중세에 들어 메멘토 모리는 종교적 색채를 띠며 시각적 상징으로 확장된다. 해골, 모래시계, 꺼져가는 촛불은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반복적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 이미지들은 단순한 허무주의가 아니다. 그것들은 묻는다. “이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도 남을 것은 무엇인가?” 메멘토 모리는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기보다, 삶의 기준을 영원에서 현재로 다시 불러온다.
현대 사회는 죽음을 멀리 치운다. 죽음과 멀어질 수록 삶은 종종 방향을 잃는다. 메멘토 모리는 이 망각에 대한 저항이다. 그것은 “곧 끝난다”는 절망이 아니라, “그러므로 지금은 중요하다”는 말이다.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시간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메멘토 모리는 삶을 어둡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윤곽을 또렷하게 만든다. 유한함을 아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삶을 선택하기 시작한다.
Carpe diem
카르페 디엠은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비롯된다. 미래를 신뢰하지 말고, 주어진 오늘을 붙잡으라는 이 명령은 흔히 순간적 쾌락의 정당화로 오해된다. 그러나 원래의 의미에서 카르페 디엠은 방탕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의 신중한 선택이었다. Carpe는 난폭하게 소비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익은 열매를 조심스럽게 따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미래를 통제할 수 없기에, 지금 이 순간을 책임 있게 살아야 한다는 태도다.
카르페 디엠은 에피쿠로스 철학과도 닿아 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방탕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 즉 평정(아타락시아)을 목표로 한다. 지금의 순간을 붙잡는다는 것은 감각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욕망과 두려움을 줄이는 일이다. 이 점에서 카르페 디엠은 오히려 욕망을 통제하는 개념이다. 또한 성숙한 판단의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말이며 알 수 없는 미래에 과도한 불안과 의미없는 계획보다는 책임있는 선택과 절제를 통한 삶의 균형을 가지라는 의미이다. 우리의 삶은 절대 무한히 반복되지 않는다. 끝은 정해져 있으며 그 끝으로 달려가는 우리의 시간에 대한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카르페 디엠은 '지금을 즐겨라' 보다는 '지금을 선택하라'라는 의미에 더 가깝지 않을까? 미래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과신하지 말라는 경고다. 이 말은 삶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무겁고 선명하게 만든다.
Memento mori & Carpe diem
이 둘의 관계는 속도와 방향의 관계와도 같다. 카르페 디엠이 삶의 추진력이라면, 메멘토 모리는 그 추진력이 향해야 할 방향이다.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순간을 가볍게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즐기되 낭비하지 않으며, 몰입하되 맹목적이지 않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은 서로를 제한하면서 동시에 완성한다. 메멘토 모리는 “모든 것은 끝난다”고 말하고, 카르페 디엠은 “그러므로 지금은 중요하다”고 응답한다. 이 대화가 유지되는 한, 인간의 삶은 방향과 밀도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카르페 디엠만을 외치는 경향이 있다.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메시지는 소비와 자기계발의 언어로 반복된다. 그러나 메멘토 모리가 사라진 카르페 디엠은 종종 피로와 공허를 남긴다. 분명한 것은 끝이 없는 행복도 불안도 무한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는 삶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르페 디엠을 구한다. 죽음을 기억하기에 오늘은 더욱 신중한 선택의 시간이 된다. 이 두 문장이 만나는 지점에서 인간은 비로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어떤 순간을, 어떤 이유로 붙잡고 있는가.”
결국 메멘토 모리는 카르페 디엠의 그림자가 아니라, 그 조건이다. 죽음을 기억하는 삶만이 순간을 진정으로 살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