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지크프리트'

두려움을 모르는 인간의 탄생

by Polymath Ryan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의 3번째 악장인 '지크프리트'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이라 평가 받는다. 이 작품은 이후 푸치니를 비롯한 여러 후대 작곡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영향은 바로 '유도동기 Leitmotiv'이다. 바그너의 후기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음악으로 인물, 장면, 감정 등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느 배역의 선율을 정했다면 그 배역이 등장 할 때마다 그 선율을 연주하고, 혹은 등장하지 않더라도 그 특정 선율을 연주하면 그 배역이 떠올리게 하는 방법이다. 그 선율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장면의 성격에 따라 리듬과 음정을 변형한다. 이 방법은 바그너 이전에도 등장했지만 오페라 시종일관 사용한 것은 바그너가 최초였다.


오페라 '지크프리트'가 초연되기 10년 전, 니체와 바그너는 처음 만난다. 니체는 바그너의 집에 장기간 머물기도하며 친민한 교류를 한다. 니체는 바그너를 '살아있는 천재'라고 했고, 바그너는 니체를 '자신을 이해하는 드문 지성'이라 평가한다. 하지만 10년 후, 오페라 '지크프리트' 초연 이후, 그 둘의 관계는 갈라진다. 바그너의 관심이 종교쪽으로 쏠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예술로 인간의 위대함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니체에게는 삶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니체는 오페라 '지크프리트'에서 바그너적 인간형의 완성을 보았다. 하지만 이 작품 이후, 4악장의 '신들의 황혼'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바그너와 니체의 철학 정점을 볼 수 있다.


오페라 '지크프리트'


바그너의 '지크프리트'는 흔히 영웅 서사의 정점으로 이해되지만, 니체의 사유를 경유해 바라볼 때 이 작품은 오히려 영웅 개념이 해체되는 지점에 놓여 있다. 지크프리트는 완성된 이상형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적 존재이며, 이 점에서 그는 니체가 말한 ‘초인(Übermensch)’ 그 자체라기보다 초인의 문턱에 선 인간에 가깝다.


지크프리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공포를 모른다”는 점이다. 그는 신의 법도, 사회의 규범, 도덕적 명령을 배우지 않는다. 니체가 비판한 ‘노예 도덕’ 이전의 상태, 다시 말해 선과 악이 아직 굳어지기 전의 인간이다. 니체에게 기존 도덕은 삶을 억압하는 장치였으며, 새로운 인간은 그것을 넘어서는 존재여야 했다. 지크프리트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니체적이다. 그는 규범에 저항하지도 않고, 복종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규범은 아직 의미를 갖지 못한다.


부러진 검 노퉁을 새로 만드는 장면은 이러한 인간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지크프리트는 아버지의 유산을 그대로 계승하지 않는다. 그는 파괴하고, 다시 만들며, 자기 손으로 무기를 완성한다. 이는 전통의 반복이 아니라 자기 생성의 은유다. 니체가 말한 “스스로 옳고 그름을 정하는 인간”의 첫 단계가 바로 여기 있다. 지크프리트는 아직 가치 창조자라 부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주어진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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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에서 자연과 소통하는 장면은 니체 철학의 또 다른 핵심과 연결된다. 지크프리트는 지식을 통해 진실에 도달하지 않는다. 그는 용의 피를 맛본 뒤 새의 언어를 이해한다. 이는 논리와 이성 이전의 세계, 즉 니체가 높이 평가한 디오니소스적 감각의 회복(몸과 감정으로 먼저 느끼는 능력)을 상징한다. 자연은 대상이 아니라 관계이며, 세계는 해석되기 이전에 먼저 느껴지는 것이다. 니체에게 진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힘에 의해 끊임없이 생성되는 것이었다. 지크프리트의 인식 방식은 바로 이 생성의 철학에 가깝다.


그러나 '지크프리트'가 니체 철학과 결정적으로 만나는 3막의 브륀힐데와의 만남이다. 니체의 초인은 단순히 강한 존재가 아니다. 그는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존재이며, 고통과 불안을 포함한 세계 전체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하는 인간이다. 지크프리트는 그 이전까지 공포를 모른다. 죽음도, 적도, 신도 두렵지 않다. 하지만 사랑 앞에서 그는 처음으로 떤다. 이 떨림은 패배가 아니라 의식의 탄생이다. 여기서 중요한 역설이 발생한다. 공포를 모르는 존재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아직 인간적이지 않았다. 니체가 말한 진정한 긍정은 위험을 제거한 안전한 상태가 아니라, 위험을 끌어안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지크프리트가 브륀힐데 앞에서 느끼는 떨림은, 그가 세계와 관계 맺는 존재로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그는 더 이상 홀로 서 있는 자연적 힘이 아니라, 타자를 인식하는 인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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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우리는 지크프리트를 초인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니체가 비판했던 것은 바로 바그너 후기 작품에서 나타나는 구원과 초월의 환상이었다. 지크프리트는 구원자가 아니다. 그는 실패할 것이고, 결국 다음 오페라 '신들의 황혼'에서 파멸한다. 그러나 그 파멸은 퇴행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열기 위한 통과의례다. 니체에게 중요한 것은 완성된 이상형이 아니라, 끊임없이 넘어서는 운동 그 자체였다.


결국 '지크프리트'는 초인의 모습이 아니라, 초인을 가능하게 한 인간의 조건을 묻는 작품이다. 공포를 모르는 자연적 존재에서, 공포를 감당할 수 있는 인간으로의 이행. 바그너는 이 과정을 신화의 언어로 그렸고, 니체는 이를 철학의 언어로 해체했다. 이 후, 두 사람의 길은 갈라졌지만, '지크프리트'라는 작품 안에서 그들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언제 강해지는가?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인간은 언제 인간이 되는가?


지크프리트의 떨리는 첫 순간, 그 답은 이미 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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