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해결되지 않기를 선택한 도시
이탈리아 남부에 과거에 '네아폴리스 New City-나폴리'라 불리던 도시가 자리잡고 있다. 기원전 7-6세기 경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도시는 그리스가 건설한 도시였다. 지중해와 닿은 항구도시로 로마 제국, 동고트 왕국, 비잔티움 제국, 노르만족, 아라곤,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의 지배를 받아 수많은 왕가의 유적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프랑스 왕족 출신이자 시칠리아 왕이었던 앙주의 샤를이 나폴리로 천도하며 수도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폼페이를 삼켰던 베수비오 화산이 옆에 있지만, 당시 화산폭발 당시 바람의 영향으로 나폴리는 안전했단다.
나폴리는 설명되기를 거부하는 도시다. 대부분의 도시는 자신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려 한다. 제국의 도시, 이성의 도시, 근대의 도시 같은 명확한 서사를 갖는다. 그러나 나폴리는 끝내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이 도시는 늘 과잉이고, 동시에 결핍이며, 질서와 혼돈이 같은 거리 위에 겹쳐 있다. 그래서 나폴리는 이해의 대상이기보다 경험의 장소에 가깝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폴리의 역사는 중심이었던 적이 거의 없다. 고대 그리스의 식민 도시로 시작해 로마, 비잔틴, 노르만, 스페인, 부르봉 왕가를 거치며 수없이 지배자를 바꾸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나폴리가 스스로를 제국의 얼굴로 내세운 적은 없다는 사실이다. 이 도시는 언제나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권력이 통과해 간 자리였다. 그래서 나폴리의 역사에는 승자의 승전보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시간이 더 많이 남아 있다.
나폴리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어는 ‘몸’다. 그 이유는 이 도시는 이성적으로 설계된 도시가 아니다. 여러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이 도시를 완전히 동화시키지 못했다. 즉 이 도시는 이념으로 정복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반복되는 지배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능이 발달한다. 지도에도 없는 골목은 비좁고, 건물은 서로를 침범하며, 생활과 거리의 경계는 흐릿하다. 사람들은 발코니에서 빨래를 널고, 창문 너머로 대화를 나눈다. 삶은 사적인 영역에 갇히지 않고 도시의 표면 위로 흘러나온다. 나폴리의 도시는 곧 인간의 몸처럼 숨 쉬고, 마모되고, 소음을 낸다. 살아남기 위해 몸이 먼저 반응해온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들의 음악은 정제된 형식보다 감정의 분출이 앞서고, 미학보다 전달이 중요하다. 그들은 음악으로 저항을 하며 생존했다.
나폴리는 또한 죽음과 공존하는 도시다. 아직 살아있는 베수비오 화산은 늘 그 자리에 있고, 폼페이의 기억은 완전히 과거가 되지 않는다. 나폴리 사람들에게 죽음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다. 그래서 이 도시는 유난히 종교적이면서도 세속적이다. 성인 숭배와 미신, 합리성과 비합리가 충돌하지 않고 나란히 존재한다. 나폴리는 제국들이 지우려 했던 모순을 끝내 제거하지 않은 도시다.
이 도시는 지금까지도 해결을 하지 않으려 한다. 수많은 제국이 지나갔지만, 어느 하나의 답으로 귀결하지 않았다.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답이 없다. 나폴리는 근대적 도시 모델을 거부한 도시다. 계획, 효율, 통제 대신 관계, 즉흥, 적응을 선택했다. 그래서 나폴리는 늘 문제적이고, 불안정하며,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도시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나폴리는 우리에게 묻는다.
모든 삶은 정리되어야 하는가? 불안함과 두려움은 우리를 살아있게 할 수 있는가?
나폴리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계속해서 소음을 내고, 몸을 움직이고, 노래한다. 이 도시는 해결되지 않기를 선택함으로써, 인간적인 것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도시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나폴리는 여전히 현재형으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