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세워진 무대, 연기하는 인간의 도시
베네치아는 위대한 이상에서 출발한 도시가 아니다. 이 도시는 도피의 결과로 태어났다. 서로마 제국이 붕괴하던 5세기, 훈족과 롬바르드족의 침입을 피해 사람들은 육지를 떠나 아드리아 해의 석호로 숨어들었다. 그곳은 도시가 세워지기에는 지나치게 불안정한 공간이었다. 단단한 땅도, 성벽을 세울 여지도 없었다. 그러나 돌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은 결국 이 불안정함 자체를 조건으로 삼아 정착한다. 베네치아는 이렇게 땅을 포기한 인간이 만든 도시다.
도시는 수백 개의 나무 말뚝 위에 세워졌다. 땅을 정복할 수 없다면, 그 위에 얹히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 선택은 도시의 성격을 결정했다. 베네치아는 농업 국가가 될 수 없었고, 영토를 확장하는 제국의 길도 포기해야 했다. 대신 바다로 열렸고, 생존을 위해 교역을 선택했다. 이 도시는 지배보다 연결을, 확장보다 중개를 택했다. 베네치아는 제국이 아니라 항구로 살아남은 문명이었다.
비잔틴 제국의 영향권 안에 있으면서도 베네치아는 높은 자율성을 유지했다. 콘스탄티노플과 이슬람 세계, 서유럽을 잇는 교역망 속에서 이 도시는 종교나 이념이 아니라 기능과 흐름으로 자신의 위치를 증명했다. 무엇을 믿느냐보다 무엇이 오가느냐가 중요했다. 베네치아는 신념의 도시가 아니라, 이동과 교환의 도시였다.
정치 체제 역시 이러한 조건을 닮았다. 베네치아에는 왕이 없었다. 그렇다고 시민이 전면에 나서는 민주정도 아니었다. 권력은 분산되어 있었고, 의도적으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총독은 존재했지만 상징에 가까웠고, 국가는 합의와 절차로 작동했다. 이 도시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지배하는가가 아니라, 지배가 눈에 띄지 않도록 유지되는 방식이었다. 베네치아의 안정은 강력한 권력이 아니라, 정교하게 연출된 균형에서 나왔다.
이러한 도시에서 가면 문화는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가면은 단순한 축제용 장식이 아니다. 외부인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항구 도시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이 될 수 있었다. 가면은 계급과 신분을 잠시 지우고, 역할을 바꾸는 장치였다. 베네치아의 카니발은 무질서가 아니라, 질서를 잠시 느슨하게 만드는 제도화된 연기였다. 이 도시에서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상황에 맞는 나’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베네치아의 본질을 가장 잘 포착한 영화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다. 이 작품에서 베네치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의 운명을 밀어붙이는 하나의 힘처럼 작동한다. 물에 잠긴 도시, 정체된 공기, 서서히 부패해 가는 아름다움 속에서 주인공은 완벽한 미에 집착하다가 끝내 무너진다. 이 도시는 말없이 증언한다. 베네치아는 언제나 화려함과 쇠퇴를 동시에 품어왔으며, 아름다움이 극에 달할수록 그 이면에는 붕괴의 시간이 함께 흐르고 있다고.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 속 베네치아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물 위에 세워진 건축물이 총격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장면은 이 도시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베네치아는 견고한 도시가 아니라, 균형 위에 연출된 공간이다. 이 장면에서 도시는 단순한 액션의 무대가 아니라,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불안정한 아름다움 그 자체로 등장한다. 베네치아가 제국이 아니라 항구로 살아남아 온 이유가 이 이미지 안에 응축되어 있다.
관광 영화 〈투어리스트〉 속 베네치아는 엽서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이 과장된 이미지는 거짓이 아니다. 베네치아는 오래전부터 타인의 시선을 전제로 존재해 온 도시였다. 가면과 카니발, 축제와 공연은 모두 ‘보여지는 것’을 계산한 문화였다. 이 도시는 자신을 숨기기보다, 연출함으로써 살아남는 길을 선택했다.
이러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오페라는 필연적으로 꽃피운다. 17세기 베네치아에는 세계 최초의 공공 오페라 극장이 등장한다. 오페라는 궁정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티켓을 사고 들어오는 관객을 전제로 한 예술이 된다. 신화의 옷을 입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철저히 인간적이다. 사랑과 배신, 욕망과 후회. 오페라는 베네치아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거울이 된다.
베네치아에서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물길은 장면 전환처럼 이어지고, 광장은 무대가 된다. 이곳에서 정체성은 고정되지 않는다. 인간은 역할을 바꾸고, 얼굴을 바꾸며, 상황에 맞게 자신을 조정한다. 이는 위선이 아니라, 물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길러진 감각이다.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베네치아는 단단해지기보다 유연해지는 문명을 선택했다.
오늘날 베네치아는 종종 ‘사라지는 도시’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이 도시는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가. 베네치아는 말한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의 얼굴만 가진 존재가 아니었으며, 정체성은 언제나 고정이 아니라 연출의 문제였다고.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먼저 도시의 형태로 보여준 곳이, 바로 베네치아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