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의 예언

by Polymath Ryan


일론 머스크는 최근 인터뷰에서 “앞으로 대부분의 직업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AI와 로봇의 발전으로 인간의 노동은 더 이상 생존의 필수 조건이 아니게 될 수 있으며, 일은 선택의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발언은 기술 낙관론처럼 들리기도 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위협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이 말이 진정으로 불편한 이유는, 그것이 단지 직업의 미래를 말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이 발언은 인간이 오랫동안 붙들고 살아왔던 삶의 구조 자체를 흔든다.


직업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루의 시간을 조직하는 틀이었고, 사회 안에서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였으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일을 힘들어하면서도, 일이 사라진 삶을 쉽게 상상하지는 못했다. 일이 사라진다는 것은 노동에서의 해방이 아니라, 의미를 담았던 우리의 일부를 내려놓는 것이다.


머스크의 전망이 기술적으로 일정 부분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분명하지만, 변화의 속도와 범위는 과장된 것 처럼 느껴진다. 방향성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AI 기술 발전 속도로 보면 어느 정도 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직업의 소멸보다는 기능적인 면이 더 크다. 쉽게 생각하자면 일의 속도와 기능은 지금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해 질 것이다. 반복되는 일, 정보를 수집하여 결정하는 일이 기반이 되는 기능은 AI가 대체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직업과 노동은 새로 생길 것이다. 그 안에는 사회의 변화 속도, 인간의 저항 그리고 결국 인간에게 찾아 올 공허와 허무 등의 문제는 남은 숙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기능이 사라진 뒤에도, 인간은 여전히 필요한 존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일은 여전히 남는다. 그것은 기계를 다루는 일이 아니라, 인간을 다루는 일이다. 인간의 감정, 몸, 고통, 신념, 그리고 관계를 직접적으로 상대하는 일은 효율의 논리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는다.


예술은 그 대표적인 예다. AI는 음악을 만들 수 있고, 이미 훌륭한 그림과 텍스트를 생산한다. 그러나 예술의 핵심은 창작 기술이 아니라, 이 시대의 감정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라는 판단에 있다. 왜 지금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왜 이 침묵이 필요한지, 왜 이 목소리가 울려야 하는지는 계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지는 책임의 문제다.


체육 역시 마찬가지다. 기록과 분석은 자동화될 수 있지만, 스포츠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기록 때문이 아니다. 넘어질 수 있는 몸, 훈련의 시간, 노쇠함과 회복의 서사는 인간의 필멸성을 전제로 한다. AI는 지지 않으며, 늙지 않고, 회복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인간의 스포츠는 여전히 이야기로 남는다.


신학과 윤리, 철학과 종교의 영역은 더욱 분명하다. 이 영역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고통과 죽음, 불의와 상실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AI는 질문에 답할 수는 있어도, 그 질문을 감당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유한성을 전제로 한 사유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교육과 돌봄, 치유의 영역 또한 마찬가지다. 이 일들의 핵심은 정보 전달이나 문제 해결이 아니라, 타인의 시간을 함께 견디는 태도에 있다. AI는 공감을 모방할 수는 있지만, 관계의 결과를 함께 살아낼 수는 없다. 인간은 여전히 인간을 필요로 한다.


AI 역시 인간의 사고를 확장한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에 있다. 그 한계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다. AI가 스스로 사고하기 시작할 때 인간이 위태로워지는 이유는,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서가 아니라 인간이 더 이상 사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기술이 아니라, 더 깊이 사유하는 인간이며, 그 사유를 공동체 안에서 감당할 수 있는 리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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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 변화는 자연스럽게 리더십의 조건을 바꾼다. 더 이상 필요한 리더는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다. 다가오는 시대의 리더는 통합과 동감에 특화된 사람이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감정을 지닌 인간들이 충돌할 때,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그 갈등이 파괴로 이어지지 않도록 구조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 리더는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함께 견딜 수 있게 하는 공간을 설계한다. 그는 앞에서 끌고 가는 존재라기보다,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자리를 지키는 사람에 가깝다. 이 리더십은 기술이 아니라 인문학적 감각에 가깝다. 일단 일론 머스크는 리더가 아니다. 앞에서 기술을 이끄는 사람은 맞지만 이끌어 가는 사람은 모두 리더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시대의 진정한 리더는 사람들을 같은 방향으로 몰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함께 머물 수 있게 하는 사람이다.


중요한 점은, 이런 리더십이 교육 과정에서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실패의 책임을 지고, 오해를 설명하고, 갈등 이후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던 경험 속에서만 형성된다. AI는 판단을 내릴 수는 있지만, 판단의 후유증을 살아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리더십의 본질은 바로 그 후유증을 감당하는 데 있다.수많은 정보의 홍수에서 침묵을 먼저 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욕망을 선택하느냐 인간을 선택하느냐의 경계에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다. 리더는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답을 생각할 수 있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그 답은 효율이 아니라 의미에 있다. 일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시대에, 인간에게 남는 일은 여전히 분명하다. 그것은 다른 인간의 삶에 의미 있게 개입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AI 이후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존재일 것이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효율의 부속품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질문을 통해 인간을 지키는 사람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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