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데스트 무소륵스키
무소륵스키(무소르그스키)는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피아노를 접하고 9살에 리스트 소품을 연주할 수 있었다.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13살에 근위 사관 학교에 입학하고, 군 복무를 시작한다. 그의 군 생활은 음악가들과 만나는 기회가 된다. 당시 러시아 제국의 화학자, 의학자, 작곡가, 피아니스트, 교수였던 알렉산드르 보르딘을 알게되며 음악 인생을 시작한다. 밀리 발라키레프, 세자르 큐이 등 작곡가와 연결되면서 러시아 5인조 동지들과 함께 러시아 음악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그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가 작곡된 직후, 그의 알코올 중독은 심해졌고, 42살에 사망한다.
모데스트 무소륵스키는 완성된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평생 체제 밖에 머문 작곡가였고, 교육받지 않은 천재였으며, 스스로를 끝내 정돈하지 못한 예술가였다. 그러나 바로 이 불완전함이 《보리스 고두노프》라는 오페라를 가능하게 했다. 이 작품은 질서 정연한 미학에서 태어난 오페라가 아니라, 균열 난 삶이 역사를 바라본 기록이기 때문이다.
무소륵스키는 “아름다운 음악”을 쓰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가 집요하게 추구한 것은 말이 어떻게 음악이 되는가였다. 그는 러시아어의 억양, 쉼, 끊김, 불완전한 문장을 그대로 음악으로 옮기려 했다. 서유럽 오페라가 감정을 노래로 승화시키는 장르라면, 무소륵스키의 오페라는 사고가 흔들리는 순간을 기록하는 장르다. 《보리스 고두노프》의 선율이 종종 투박하고 거칠게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미완이 아니라, 의도된 윤리적 선택이다.
이러한 미학은 푸슈킨의 역사극 「보리스 고두노프」를 만났을 때 비로소 결정적인 형태를 갖는다. 푸슈킨이 그린 보리스는 악당도 영웅도 아니다. 그는 역사에 의해 떠밀린 인간이며, 자신의 죄를 명확히 인식하지만 그것을 되돌릴 수 없는 인물이다. 무소륵스키는 이 모호한 인간상에서 러시아 권력의 본질을 보았다. 즉, 권력은 개인의 의지 이전에 이미 죄의 구조를 갖고 있다는 통찰이다.
오페라에서 보리스는 노래할수록 고립된다. 그의 독백은 전통적인 아리아처럼 감정을 분출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이 끊기고, 언어가 무너지고, 기억이 침범당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는 작곡가 자신의 내적 풍경과도 닮아 있다. 무소륵스키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고, 사회적 성공의 문법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 실패의 감각을 통해, 권력이 인간을 어떻게 붕괴시키는지를 누구보다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또 하나의 존재는 민중이다. 무소륵스키는 민중을 장식적 배경으로 두지 않는다. 합창은 이 오페라의 구조적 중심이며, 때로는 차르보다 더 강력한 존재로 작동한다. 그러나 그 민중은 혁명적 주체로 이상화되지 않는다. 그들은 울고, 외치고, 복종하고, 다시 침묵한다. 이는 민중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무력함을 외면하지 않았던 무소륵스키의 시선이다.
작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성자 바보’는 무소륵스키 자신과도 겹친다. 사회의 언어를 말하지 못하고, 진실을 말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존재. 그의 울음은 정치적 발언도, 도덕적 선언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말해질 수 없는 세계에서 남겨진 마지막 소리다. 이 울음 앞에서 왕은 죽고, 민중은 흩어진다. 남는 것은 역사도, 승리도 아닌, 윤리의 파편이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완성된 오페라가 아니다. 실제로도 여러 판본이 존재하고, 작곡가 사후에 타인의 손을 거쳤다. 그러나 이 미완성은 결핍이 아니라, 작품의 본질에 가깝다. 왜냐하면 무소륵스키에게 역사란 언제나 완결되지 않는 고통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이 오페라는 묻는다.
권력은 누구의 죄인가.
민중은 언제 말하고, 언제 침묵하는가.
그리고 예술은 그 사이에서 무엇을 기록할 수 있는가.
무소륵스키는 답을 주지 않는다. 그는 다만,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지우지 않았을 뿐이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그래서 러시아 오페라의 정점이자, 예술이 권력 앞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태도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