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의 악단' 후기

by Polymath Ryan


지난 주, 필자는 부모님을 모시고 영화관에 다녀왔다. 영화 '신의 악단'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작년 12월 31일 개봉한 이 영화는 제목으로는 음악 영화이자, 설정은 정치적 우화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개봉관 수로 시작했지만 꾸준히 입소문을 타고 예매율이 상승하고 있단다.


%EC%8B%A0%EC%9D%98%EC%95%85%EB%8B%A8.jpg?type=w1

이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기반으로 제작이 되었고, 영화 내용은 픽션이다.


북한은 외화벌이 목적으로 '찬양밴드'를 조직하여 2주 안에 선보여야 하는 기이하고 아이러니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단순한 오락을 위함이 아니라, 냉소적 현실 속에서 인간의 연대와 음악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다룬다. 뛰어난 영상미나 그래픽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인간에게 음악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와 체제 속 인간이 어떻게 균열되는지를 묻는다.


역사 적으로 볼 때,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든 자유가 없는 나라든 언제나 음악이 필요했다. 국가는 음악을 통해 감정을 조직하고,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며, 개인의 불안을 관리했다. 예를 들면, 군가는 군인 정신을 고취시켜 연대의 끈을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 싸우게 한다. 애국가는 국가의 정체성을 끓어오르게 하고, 종교 음악은 신에 대한 믿음을 깊이 가지도록 만든다. 이 음악의 능력은 이미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정리해 놓았다. 음악은 인간 영혼을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며 국가의 통치 수단이라고 했다.


영화 '신의 악단'은 이 지점에서 균열을 낸다. 체제의 외화벌이 목적으로 금지된 음악을 허용하며 균열은 시작된다. 음악의 힘을 간과한 것이다. 북한 체제는 권력과 생존의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음악은 통제되지 않았다. 인간의 감정이 인간의 몸을 통과하는 순간, 목적의 계산은 이미 어긋난다.


감시자의 역할로 보위부 간부 둘 또한 균열이 생긴다. 그들은 신을 믿기에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명령 수행을 위해 노래한다. 그러나 반복되는 연습과 공연 속에서 정서적 균열이 일어난다. 키에르케고르는 "신을 믿는 믿음은 믿음의 행위 그 자체에 있는가?"라며 질문을 던졌다. 신을 믿는 믿음은 믿어진 후에 생기는 것일까? 아니면 행위에 의해 생기는 것일까의 질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위선으로 시작한 행위는 그들의 내면에 균열을 일으키며 변화가 발생하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서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생각해보게 되는 지점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음악을 해방의 절대적 도구로 보여지지 않는다. 다만 음악은 통제에 대한 저항과 감정의 솔직함 그리고 신을 느끼는 시작점으로 그린다. 바로 이 시작으로 그들의 연대와 결국 희생까지 감수하는 고귀함을 가질 수 있다. 그 고귀함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희생하는 것은 예수의 모습이다.


신의 이름을 빌린 악단이지만 영화에서는 한번도 신이 등장하거나 신을 체험하거나 하는 장면은 없다. 그저 서로의 약함과 생존 그리고 신에 대한 믿음만 있을 뿐이다. 즉 신이 없는 곳에서, 믿음이 없는 곳에서 그들은 신을 만나고, 믿음을 갖게 된다. 비록 고난 중에 신은 침묵했지만 찬양은 멈추지 않았다. 신의 뜻을 인간이 알 수 없지만, 신을 향한 마음과 행위가 멈추지 않는다면 신이 인간에게 보인 그 고귀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영화 관람을 한 뒤, 탈북민 유투버의 영상을 봤다. 필자는 뇌리에 박히는 한 마디를 듣는다.

"왜 남한 사람들은 신앙의 자유가 있는데, 직장에서 예수 믿는 말을 안하더라. 그 이유를 모르겠다."


용기없는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