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리만
세계가 달라진 순간
19세기는 인간 이성이 자신감을 얻는 동시에, 그 한계를 처음으로 정면에서 마주한 시대였다.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그 발전은 더 이상 세계가 단순하고 명료하다는 믿음을 보장해 주지 않았다. 자연은 계산 가능해졌으나, 이해 가능해지지는 않았다. 바로 이 균열의 지점에서, 한 조용한 수학자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가장 근본적인 틀을 다시 묻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베른하르트 리만이다.
리만의 삶은 외적으로 보면 극적이지 않다. 그는 독일 하노버의 가난한 루터 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내성적이고 병약했으며, 학문적 야심을 드러내는 인물도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기 위해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다. 하지만 수학의 능력과 관심은 그를 수학으로 다시 이끈다. 그의 내성적인 성격으로인해 발표를 두려워해 말을 더듬었고, 강단에 서는 일조차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그의 사유는 그 어떤 혁명가보다 급진적이었다. 그는 수학의 한 분과를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당연하게 이해해 온 방식” 자체를 흔들었다.
리만 이전까지 공간은 질문의 대상이 아니었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단순한 수학 이론이 아니라, 세계의 구조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직선은 가장 짧은 거리였고, 평행선은 영원히 만나지 않았다. 이 기하학은 자연뿐 아니라 인간의 인식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칸트는 공간을 인간 인식의 선험적 형식으로 보았고, 이는 곧 “공간은 경험 이전에 이미 주어진다”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리만은 이 오랜 합의 앞에서 멈춰 선다. 그리고 묻는다. 공간이 반드시 그렇게 생겨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파장은 거대했다. 리만은 공간을 고정된 무대가 아니라, 측정 방법에 따라 달라지는 구조로 다시 정의했다. 거리와 각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공간의 성질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공간은 하나의 필연이 아니라, 여러 가능한 구조 중 하나가 된다.
이 순간, 수학은 더 이상 자연을 모사하는 언어가 아니라, 자연이 가능해지는 조건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인간은 세계를 ‘발견’하는 존재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로 재위치된다. 이것이 리만 사유의 진정한 조용한 혁명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혁명이 처음에는 거의 이해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리만의 기하학은 지나치게 추상적이었고, 당장 쓸모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이 중력을 힘이 아니라 공간 자체의 휘어짐으로 설명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유클리드적 공간에서는 성립할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리만이 열어 둔 가능성의 공간 안으로 들어가, 우주의 구조를 새롭게 기술했다.
이로써 리만은 사후에야 비로소 증명된다.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수학자가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세계를 위한 언어를 만든 인물이었다.
리만의 또 다른 유산은 정수론에 있다. 리만 제타 함수와 그로부터 파생된 리만 가설은 오늘날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본질은 계산의 난해함이 아니다. 그것은 “무작위처럼 보이는 소수의 분포 뒤에 어떤 질서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수학을 넘어, 자연과 인간 사회, 심지어 역사와 문화까지 관통한다. 우리는 혼돈 속에서 의미를 찾고 있는가, 아니면 질서는 애초에 인간의 기대일 뿐인가?
이 지점에서 리만은 니체와 사유적으로 만난다. 니체는 절대적 진리의 붕괴를 선언했고, 리만은 절대적 공간의 붕괴를 보여주었다. 하나의 관점만이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인식, 이는 근대 이후 철학과 과학을 관통하는 공통의 결론이다. 리만은 이를 선언하지 않았고, 설득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다른 방식이 가능함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40세의 짧은 삶에서 리만이 남긴 것은 방대한 업적의 목록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질문을 남겼다.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은 정말 필연적인가?
혹시 우리는 익숙함을 진리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과학이 정교해질수록, 인간은 더 많은 모델과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모든 모델은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리만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조용하게 알려준 인물이다.
결국 리만의 유산은 수학이 아니라 태도다. 당연하다고 믿는 것을 의심할 용기, 그리고 세계가 하나의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 그는 말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인간을 가능성의 세계 앞으로 밀어 놓았다.
그 이후로 세계는 다시 예전처럼 단순해질 수 없었고,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