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의 숨은 아버지

요한 바르톨트 용킨트

by Polymath Ryan


순간을 붙잡은 남자


빛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는 순간, 강물의 색은 달라지고, 하늘은 전혀 다른 표정을 짓는다. 19세기 중반, 파리의 센 강변에는 이 덧없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 스케치북을 손에서 놓지 않는 한 남자가 있었다. 요한 바르톨트 용킨트.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꽃을 피운 이 화가는 생전에 그리 유명하지 않았지만, 훗날 클로드 모네가 "내 진정한 스승"이라 부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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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킨트가 파리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840년대였다. 당시 프랑스 화단은 두 개의 거대한 흐름이 부딪히고 있었다. 한쪽에는 신화와 역사를 장엄하게 재현해야 한다는 아카데미즘의 전통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지금 눈앞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는 사실주의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다.


쿠르베는 농부와 노동자를 캔버스 위에 올렸고, 밀레는 이삭을 줍는 여인들을 그렸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산업혁명이 도시를 바꾸고 있었고, 1839년에 발명된 사진기는 화가들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림이 현실을 정확히 베끼는 것이라면, 이제 사진이 있는데 그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용킨트는 이 질문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답했다. 그는 사진이 결코 담을 수 없는 것을 그리기로 했다. 바로 빛이 변해가는 순간의 감각,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대기의 떨림이었다.


그의 철학은 단순하지만 혁명적이었다. 자연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같은 장소라도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맑은 날과 흐린 날이 다르다. 그렇다면 화가가 포착해야 할 것은 대상의 윤곽이나 형태가 아니라, 그 특정한 순간에만 존재하는 빛과 공기의 조건이다. 용킨트는 이 생각을 이론으로 정리하거나 선언문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강변으로 나가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업 방식은 독특했다. 야외에서 직접 스케치하고 수채화로 빠르게 현장의 인상을 포착한 뒤, 작업실에서 그 감각을 기억에 의지해 유화로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당시 화가들이 흔히 하던 실수를 피하려 했다. 작업실에서 '완성'을 하는 동안 현장의 생생함을 잃지 않는 것. 그래서 그의 유화는 붓 터치를 매끄럽게 다듬지 않았다. 거칠고 자유로운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것은 미완성이 아니라 의도였다.


그의 삶은 그림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알코올 의존증과 신경증이 그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한때 네덜란드로 돌아가 붓을 완전히 내려놓기도 했다. 파리의 친구들과 후원자들이 그를 다시 불러들이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는 용킨트의 후기작들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능숙하게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캔버스 앞에서만큼은 정직했다. 그가 그린 것은 아름답게 꾸민 자연이 아니라, 실제로 그날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던 빛이었다.


노르망디 해안의 〈에트르타의 일몰〉을 보면 이것이 느껴진다. 화면의 3분의 2를 하늘이 차지하고, 절벽과 바다는 아래로 밀려난다. 주인공은 지형이 아니라 저녁 하늘에 번지는 빛이다. 센 강변에서 그린 노트르담 연작에서도 성당은 멀리 물러서 있고, 강물에 흔들리는 빛의 반사가 전면에 나선다. 그는 같은 장소를 다른 날씨와 다른 시간대에 반복해서 그렸다. 모네가 훗날 루앙 대성당을 30점 넘게 그리며 빛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탐구했을 때, 그 방법론의 씨앗은 이미 용킨트가 센 강변에서 뿌려놓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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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킨트는 또한 자신의 네덜란드적 뿌리를 결코 지우지 않았다. 렘브란트와 베르메르로 이어지는 네덜란드 황금시대 회화의 전통, 즉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빛을 섬세하게 다루는 감각이 그의 DNA 안에 있었다. 〈하를럼 근처의 운하〉 같은 작품에서는 낮고 평평한 지평선과 광대한 하늘이라는 전형적인 네덜란드 구도 위에, 훨씬 자유롭고 즉흥적인 붓 터치가 얹혀 있다. 그는 전통을 버린 것이 아니라, 전통을 발판 삼아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용킨트는 1891년, 알프스 산자락의 작은 마을 라코트생탕드레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모네나 르누아르처럼 교과서 첫 장에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상주의의 역사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빛나는 혁명의 뒤편에 용킨트가 서 있다. 그는 "빛은 변한다, 그러니 그 변화를 그려라"라는 생각을 실천으로 증명한 사람이었다. 이론이 아니라 매일 강변으로 나가는 발걸음으로.


모네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용킨트와 함께 노르망디 해안을 거닐며 그림을 그렸던 그 시간들이 자신의 눈을 열어주었다고. 한 화가의 눈이 다른 화가의 눈을 열어준다. 그리고 그 눈이 열린 세계를 우리는 인상주의라고 부른다."


용킨트는 그 문을 가장 먼저 두드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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