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 샬라메,
네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by Polymath Ryan


요즘 티모시 샬라메의 오페라와 발레에 대한 언급이 소소하게 이슈를 만들어 낸다. 발언의 맥락을 모른체 동조하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아, 맥락을 위해 찾아 보았다. 샬라메는 영화 산업의 위기를 논하며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작품이라면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극장에 갈 것이라 말하다가 발레와 오페라에 대한 발언을 한 것이다. 사실 필자가 전에 언급했듯 OTT 산업은 영화계의 큰 충격이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왕과 사는 남자'의 장항준 감독도 인터뷰에서 꽤나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과연 사극이 관객을 영화관으로 끌어올 수 있냐는 고민이다. 그의 발언은 영화계의 숙제를 이야기하려다 나온 비유였고, 악의적이기 보다 경솔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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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찾아보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작년 시즌 객석 점유율이 72%로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티켓 구매자 평균 연령도 50세에서 44세로 낮아졌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발레와 오페라는 지금의 영화에 영향을 끼친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며 반박했다.


그렇다. 영화만에 살아있는 예술이라 생각하는 30세의 청년의 말은 정말 경솔했다.


물론 그가 젊은 영화인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솔한 그 청년의 말에 청중은 웃었다. 필자는 거기에 집중해본다. 청중은 그의 말이 틀렸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속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요즘 젊은 세대는 모든 것을 유용성으로 판단하도록 훈련받았다. 수익, 스펙, 조회수 등 즉각적인 가치가 더 유용하다고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죽은 것, 혹은 죽어가는 것'이라 느낀다. 발레와 오페라는 그 기준에서 불리하다.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익숙해지기까지 노력이 필요하며, 티켓은 비싸고, 공연장은 멀다.


그러나 이 불리함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느린 것을 견디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영상은 2배속으로보고, 책은 누군가 요약해 놓은 요약본을 보며, 음악은 앞부분 10초를 듣는다. 이 감각으로 오페라와 발레를 보는 것은 무리일 듯 싶다. 바로 이 부분에서 청중은 웃으며 공명을 만든 것이 아닐까?


헤겔이 말하는 시대정신


철학자 헤겔은 '시대정신 Zeitgeist'를 이렇게 설명했다. 각 시대에는 그 시대를 지배하는 정신이 있으며, 역사는 그 정신이 자기 자신을 실현해가는 과정이라 했다. 어떤 예술도, 어떤 사상도 시대정신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페라가 탄생했을 때, 오페라는 당시의 가장 혁신적인 예술이었다. 교회 안에서 민중으로 터져나오며 음악과 연기와 무대가 결합된 블록버스터급이었다. 당시 대중은 충격을 받았고, 열광했다. 그리고 지금의 발레와 오페라는 '지켜야 할 유산'이 되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문명의 흥망을 이야기하며, 도전에 응전하지 못하는 문명은 쇠퇴한다고 했다. 사실 지금 오페라와 발레는 그 도전 앞에 서있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우리는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


발끈의 딜레마


오페라계와 발레계 더 나아가서 클래식계의 반발은 당연하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예술이 '아무도 관심 없다'는 말로 정리되는 것은 말도 안된다. 그러나 반발에서 끝나면 안된다. 이 이슈에 편승하여 한마디씩 거드는 것에서 그치면 안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예술이 대중들에게 어떤 언어로 말을 걸고 있느냐의 질문이 필요하다.


딜레마다. 대중에게 맞추면 예술은 변질되기 쉽고 지키기만 한다면 고립된다. 도데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을 찾기 위해서는 질문을 먼저 해야한다.


역사학자 쿤이 말한 패러다임 전환은 막을 수 없지만 질문하고 저항해야 한다. 그렇다. 수백 년간 인간이 쌓아온 감각의 언어들도 늘 저항하고 질문했다. 그 저항으로 우리가 나눠놓은 시대 -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 낭만 등 - 들이 탄생한 것이다. 각 시대마다 이 딜레마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예술가들은 이 딜레마에 질문을 하며 새로운 길을 걸었다.


지키는 자의 숙명


누군가 필자에게 '클래식은 늘 과거의 영광만 쫓는다'라며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정복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늘 외롭고, 시대가 등을 돌려도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지킨다는 것은 본질은 보존하며 지금 시대의 언어로 말을 걸어야 한다. 왜냐하면 시대는 얼마든지 바뀌지만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늘 본질에 대한 말(질문)을 걸어야 한다.


시대를 타고 온 것


샬라메의 발언이 진짜 무서운 것은 그것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맞는 말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객석 점유율, 평균 연령의 낮아짐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

왜 그도, 청중도 웃었는가에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시대를 타고 온 것은 언젠가 시대를 타고 간다. 하지만 어떻게 가느냐는 지키는 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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