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언어를 읽은 사람

프랜시스 크릭

by Polymath Ryan


1953년 2월 28일 오후, 영국 케임브리지의 한 술집에서 서른여섯 살의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서며 소리쳤다. '우리가 생명의 비밀을 발견했다!' 같이 있던 손님들은 무슨 말인지 몰랐겠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은 그날 오전,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완성했다. 인류가 수천 년간 품어온 질문 — 생명이란 무엇인가 — 에 처음으로 분자 수준의 답을 내놓은 순간이었다.


크릭은 그 순간으로만 기억되기엔 너무 복잡한 사람이었다. 그는 물리학도로 출발해 생물학을 뒤흔들었고, 노벨상을 받은 후에는 뇌과학으로 방향을 틀어 의식의 문제에 남은 생애를 바쳤다. 신을 믿지 않았지만 생명의 경이 앞에서 누구보다 경건했다. 오만했지만 틀렸을 때 물러섰다. 그는 과학자이기 전에, 질문하는 인간이었다.

%ED%94%84%EB%9E%9C%EC%8B%9C%EC%8A%A4%ED%81%AC%EB%A6%AD.jpg?type=w1 크릭과 왓슨

물리학자가 생명을 만났을 때


크릭은 1916년 영국 노샘프턴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영국 해군을 위해 기뢰를 설계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전환점을 맞는다.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1944년 쓴 작은 책 한 권이 그의 방향을 바꿨다. 제목은 '생명이란 무엇인가'. 슈뢰딩거는 그 책에서 생명 현상을 물리학과 화학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크릭은 그 주장에 매혹됐다.


그 후, 그는 생물학으로 전향했다. 서른 살이 넘어 완전히 다른 분야에 뛰어드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크릭에게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이었다. 그는 케임브리지의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단백질 구조를 연구하다 제임스 왓슨을 만났다. 왓슨은 스물세 살의 미국인 생물학자였다. 둘은 전혀 달랐다 — 크릭은 웅변적이고 이론적이었으며, 왓슨은 젊고 직관적이었다. 하지만 둘 다 DNA에 집착하고 있었다.


이중나선, 그리고 그늘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문제는 구조였다. 구조를 알면 작동 방식을 알 수 있고, 작동 방식을 알면 생명의 언어를 읽을 수 있다. 크릭과 왓슨은 모형을 만들고 허물기를 반복했다. 결정적인 단서는 로절린드 프랭클린이 찍은 X선 회절 사진에서 왔다. 왓슨이 프랭클린의 허락 없이 그 사진을 보았고, 그것이 이중나선 구조를 확인하는 결정적 근거가 됐다.


1962년, 크릭과 왓슨, 그리고 모리스 윌킨스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프랭클린은 1958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였다. 노벨상은 사후에 수여되지 않는다. 역사는 그녀의 기여를 오랫동안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크릭은 말년에 프랭클린의 역할이 충분히 평가받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위대한 발견에도 그늘은 있다. 그리고 그 그늘을 외면하지 않는 것도 과학자의 몫이다.


다음 질문으로


대부분의 과학자라면 DNA 이중나선 발견으로 남은 생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크릭은 달랐다. 노벨상을 받은 후에도 그는 계속 다음 질문을 찾았다. 1970년대부터 그는 뇌과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의 새로운 질문은 이것이었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나'라고 느끼는 그 감각은 어디서 오는가의 질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전환을 의아하게 여겼다. DNA에서 의식으로 — 너무 멀리 간 것 아닌가. 하지만 크릭에게는 일관된 질문이었다. 생명의 물리적 기반을 밝혔다면, 이제 정신의 물리적 기반을 밝혀야 한다. 그는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와 협력해 의식의 신경 상관물을 연구했다. 의식이 뇌의 특정 신경 활동에서 비롯된다는 이 접근은 당시로서는 매우 도발적이었다. 많은 철학자와 종교인들이 반발했다. 크릭은 개의치 않았다.


신 없이 경이를 느낀 사람


크릭은 평생 무신론자였다. 종교적 설명을 거부하고, 생명과 의식을 순전히 물질적 현상으로 보았다. 그는 이것을 '놀라운 가설'이라 불렀다 — 인간의 기쁨, 슬픔, 기억, 야망, 자아감, 자유의지까지, 이 모든 것이 결국 수많은 신경세포와 그 분자들의 작용에 불과하다는 것. 이 말은 냉정하게 들린다. 하지만 크릭이 전하고자 한 것은 허무주의가 아니었다.


그는 신 없이도 생명 앞에서 경이를 느꼈다. 오히려 그 경이는 더 순수했다. 신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경이로운 것이 아니라, 단순한 물질이 이렇게 복잡하고 아름다운 생명을 만들어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다는 것. DNA 이중나선의 구조를 처음 본 순간, 그는 그 단순한 우아함에 압도됐다고 했다. 두 가닥이 나선을 이루며 감기는 구조 — 복잡한 생명 정보를 담기에 이보다 완벽한 형태가 있을까.


죽기 전날까지


크릭은 2004년 7월 28일,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대장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죽기 전날, 의식에 관한 논문을 수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질문을 놓지 않은 사람. 답이 없어도 질문을 계속하는 것이 과학자의 삶이라는 것을 그는 몸으로 보여줬다.


프랜시스 크릭이 남긴 것은 DNA 이중나선 구조만이 아니다. 그는 생명과학과 신경과학이라는 두 분야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들은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의식의 문제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크릭이 제기한 질문들을 지금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어받아 탐구하고 있다.


좋은 질문은 답보다 오래 산다. 그리고 크릭은 평생 좋은 질문을 던진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