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북스테후데
1705년 가을, 스물 살의 젊은 오르간 연주자가 독일 튀링겐 지방의 작은 도시 아른슈타트를 떠났다. 목적지는 북쪽의 항구도시 뤼베크. 거리는 약 400킬로미터. 그는 걸어서 갔다. 교회로부터는 4주의 휴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4개월 후에야 돌아왔다. 그 젊은이의 이름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였다. 그리고 그를 400km 걷게 만든 사람이 바로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였다.
바흐가 북스테후데를 만나러 걸어간 이야기는 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그러나 정작 북스테후데는 바흐보다 훨씬 덜 알려져 있다. 제자의 빛이 너무 밝아 스승이 그늘에 가려진 것이다. 그러나 그 그늘 속을 들여다보면, 바로크 음악의 가장 풍요로운 세계 중 하나가 숨어 있다.
뤼베크의 오르간 앞에서
디트리히 북스테후데는 1637년경 덴마크 헬싱보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출생지와 날짜조차 불분명할 만큼, 그의 초기 생애는 기록이 드물다. 하지만 1668년, 그가 독일 뤼베크의 마리엔 교회 오르간 연주자 겸 음악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역사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그는 이 자리를 죽을 때까지, 약 40년간 지켰다.
마리엔 교회는 뤼베크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교회였다. 그 오르간 앞에 앉는 것은 단순한 연주자가 아니라, 도시의 음악 전체를 이끄는 책임자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북스테후데는 그 자리에서 오르간 음악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의 연주는 즉흥적이면서도 구조적이었고, 경건하면서도 극적이었다. 소문은 독일 전역으로 퍼졌다. 그리고 그 소문이 젊은 바흐의 귀에 닿았다.
그리고 바흐는 그를 만나기 위해 400km를 걷는다.
그렇다면 바흐는 그에게서 무엇을 얻어갔을까?
바흐는 4주의 휴가를 이용해 400km를 걸었고, 당시 약 68세의 북스테후데와 20세의 바흐는 나이를 뛰어넘는 그 어떤 시간을 가졌을까?
저녁 음악회 — 어둠 속의 음악
북스테후데가 뤼베크에서 이룬 가장 독창적인 업적 중 하나는 '아벤트무지크', 즉 저녁 음악회다. 그는 매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다섯 번의 일요일 저녁, 마리엔 교회에서 대규모 음악회를 열었다. 오르간, 성악, 현악, 관악이 어우러지는 이 공연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형식이었다. 예배가 아닌, 순수한 음악 감상을 위한 자리였다.
촛불이 켜진 교회 안,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 아벤트무지크는 단순한 연주회가 아니었다. 그것은 청중을 일상에서 끌어내 다른 차원으로 데려가는 경험이었다. 북스테후데는 음악이 단순한 예배의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을 고양시키는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뤼베크 시민들에게 보여줬다. 바흐는 단지 연주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만이 아니었고 음악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배웠다.
신앙과 음악 사이
북스테후데의 음악은 깊은 신앙에서 비롯됐다. 루터교 전통 안에서 그는 오르간 음악을 신을 향한 가장 직접적인 언어로 여겼다. 그의 오르간 작품들, 특히 토카타와 프렐류드 연작은 즉흥적인 자유로움과 엄격한 대위법이 공존한다. 형식의 틀 안에서 영혼이 날개를 펴는 것 같은 음악이다.
성악 칸타타도 그의 중요한 유산이다. 그는 성경 텍스트와 루터교 찬송가를 바탕으로 수십 편의 칸타타를 작곡했다. 이 작품들은 훗날 바흐가 라이프치히에서 완성할 교회 칸타타의 직접적인 선례가 됐다. 북스테후데 없이 바흐의 칸타타를 상상하기 어렵다. 스승이 닦아놓은 길 위에서 제자가 더 멀리 걸어간 것이다.
사위 조건과 역사의 아이러니
북스테후데에게는 딸이 있었다. 당시 마리엔 교회의 관례에 따르면, 후임 오르간 연주자는 전임자의 딸과 결혼해야 했다. 이 조건 때문에 여러 재능 있는 음악가들이 뤼베크행을 포기했다는 기록이 있다. 바흐도 뤼베크에서 4개월을 보내며 후임자리를 제안받았지만, 결국 거절하고 아른슈타트로 돌아갔다. 헨델도 젊은 시절 뤼베크를 방문해 같은 제안을 받고 거절했다.
이 기묘한 조건은 당시 음악가의 자리가 얼마나 세습적이고 제도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러니하다. 그 조건이 없었다면 바흐나 헨델이 뤼베크에 눌러앉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뤼베크에 머물렀다면, 우리가 아는 음악사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역사는 때로 사소해 보이는 조건 하나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그늘 속의 거장
북스테후데는 1707년 뤼베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음악은 오랫동안 제자 바흐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20세기 들어서야 음악학자들이 그의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오르간 연주자들 사이에서 북스테후데의 작품은 필수 레퍼토리가 됐다. 뒤늦게 찾아온 인정이지만, 음악 자체는 300년의 시간을 견뎌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우리는 종종 제자의 성취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제자를 만들어낸 스승의 세계가 없었다면, 그 성취도 없었다. 바흐가 400km를 걸어간 것은 단순한 동경이 아니었다. 북스테후데의 음악 안에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좋은 스승은 답을 가르치지 않는다. 제자가 스스로 질문을 발견하게 만든다. 북스테후데는 바흐에게 그런 스승이었다.
스승이라면 북스테후데 같은 스승인가? 제자라면 북스테후데 같은 스승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