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인문학 36

멈춘 시계의 도시, 하바나

by Polymath Ryan


하바나의 거리에는 1950년대 미국 자동차가 아직도 달린다. 분홍빛 캐딜락, 파란 쉐보레, 녹슨 포드. 차체는 낡았지만 엔진은 살아있다. 처음 이 장면을 보는 여행자는 낭만을 느낀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마치 영화 세트 안에 들어온 것 같다고. 하지만 조금 더 오래 하바나를 걷다 보면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이 도시의 시계는 왜 멈췄는가. 그리고 그 멈춤은 선택이었는가, 강요였는가.


하바나는 카리브해 쿠바 북쪽 해안에 자리한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카리브해 무역의 중심지였고, 20세기 초에는 '카리브해의 파리'라 불릴 만큼 화려한 도시였다. 카지노가 있었고, 재즈 클럽이 있었고,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1959년,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이 모든 것을 바꿨다.


혁명이 남긴 것


1959년 1월 1일, 카스트로의 혁명군이 하바나에 입성했다. 바티스타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가 됐다. 혁명의 상징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체 게바라였다. 그의 얼굴은 지금도 하바나 곳곳의 벽에 그려져 있다. 베레모를 쓴 그 초상화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제된 이미지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체 게바라가 꿈꾼 혁명의 이상과, 60년이 지난 하바나의 현실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미국은 즉각 반응했다. 1961년 외교 단절, 1962년 전면 경제 봉쇄. 쿠바는 미국산 물자를 더 이상 들여올 수 없게 됐다. 그래서 1950년대에 수입된 미국 자동차들은 교체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남았다. 낭만으로 보이는 그 풍경은 사실 봉쇄의 흔적이다. 혁명은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을 가져왔다. 쿠바의 문맹률은 혁명 후 수년 만에 거의 0%에 가깝게 떨어졌고, 평균 수명은 카리브해 최상위권이다. 하지만 혁명은 동시에 언론의 자유, 이동의 자유, 경제적 선택의 자유를 앗아갔다.


말레콘 — 바다와 도시의 경계에서


하바나에는 말레콘이라는 해안 산책로가 있다. 약 8킬로미터에 걸쳐 바다와 도시를 잇는 이 길은 하바나 사람들의 거실이다. 저녁이면 연인들이 앉아 파도를 바라보고, 노인들이 낚시를 하고, 젊은이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한다. 신분과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말레콘 위에서 하바나 사람들은 자유롭다. 집 안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바다 앞에서는 한다. 쿠바의 미래에 대해,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떠나고 싶다는 마음에 대해. 바다 저편에는 미국이 있다. 90마일, 약 145킬로미터. 맑은 날에는 수평선 너머가 보일 것도 같은 그 거리가, 지난 60년간 쿠바 사람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말레콘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는 하바나 사람의 눈빛에는 그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다. 그리움인지, 체념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갇힘 속에서 피어난 예술


역설적이게도, 하바나는 예술의 도시다. 살사와 손, 룸바와 차차차. 쿠바의 음악은 16세기부터 섬으로 끌려온 아프리카 노예들의 리듬과, 스페인 식민지 지배자들의 멜로디가 수백 년에 걸쳐 섞인 결과다. 고통과 억압 속에서 태어난 음악이 가장 생동감 넘치는 리듬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인간의 창조성이 얼마나 집요한지를 보여준다.


하바나의 화가들은 캔버스가 없으면 버려진 판자에 그림을 그린다. 무용수들은 낡은 연습실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발레를 훈련한다. 쿠바 국립 발레단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무용단이다. 물질이 부족한 곳에서 정신이 더 치열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표현 외에 다른 출구가 없기 때문인지 — 아마 둘 다일 것이다. 하바나의 예술은 아름다움인 동시에, 살아남기 위한 언어다. 그래서 쿠바를 찾는 사람들은 이 모습을 담고 느끼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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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자와 남는 자


하바나를 이해하려면 떠난 사람들을 봐야 한다. 혁명 직후 수십만 명의 쿠바인이 미국 마이애미로 이주했다. 그 이후에도 수십 년간 많은 이들이 바다를 건넜다. 뗏목을 타고, 작은 보트를 타고, 때로는 헤엄쳐서. 그 90마일의 바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삼켰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마이애미의 리틀 하바나에는 고향을 떠나온 쿠바인들이 만든 또 다른 하바나가 있다. 두 도시는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서로를 부정하며 존재한다.


그런데 남은 사람들이 있다. 떠날 수 없어서 남은 사람도 있고, 떠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도 있다. 혁명을 믿는 사람들, 이 섬을 사랑하는 사람들, 다른 곳에서의 삶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 하바나는 그 남은 사람들의 도시다. 그들이 낡은 건물을 고치고, 오래된 자동차를 운전하고, 말레콘에서 노래하며 도시를 살아있게 만든다. 오늘도 하바나의 골목에서는 누군가의 창문에서 살사 음악이 흘러나오고,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소리가 들리고, 저녁 냄새가 퍼진다. 삶은 계속된다.


시계는 정말 멈췄는가


하바나의 시계가 멈췄다고 말하는 것은 반만 맞다. 외형은 멈춰 있지만, 사람들은 멈추지 않았다. 2015년 미국과 쿠바의 외교 관계가 53년 만에 회복됐을 때, 하바나는 조심스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민간 식당이 늘었고, 인터넷이 조금씩 열렸고, 젊은 세대는 스마트폰을 들고 세계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7년 이후 미국의 정책이 다시 강경해지면서 그 변화는 다시 느려졌다. 하바나는 지금도 변화와 정체 사이 어딘가에 있다.


분홍빛 캐딜락은 아직 달리고, 혁명의 벽화는 아직 바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옆에서 젊은 하바나 사람들은 유튜브를 보고, 영어를 배우고, 바깥세상을 상상한다. 멈춘 것처럼 보이는 도시에서, 사람들의 욕망은 멈추지 않았다. 바라나시가 시간과 함께 흐르는 도시라면, 하바나는 시간에 저항하는 도시다. 그 저항이 이념에서 비롯됐든, 봉쇄에서 비롯됐든,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어떤 조건에서도 노래하고, 사랑하고, 내일을 꿈꾼다. 그것이 하바나가 세계에서 가장 슬프고, 동시에 가장 생동감 넘치는 도시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