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 폴 브로카
1861년 4월, 파리의 비세트르 병원에 한 남자가 실려 왔다. 환자의 이름은 루이 빅토르 르보르뉴. 그는 21년째 말을 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말을 하려 해도 '탄'이라는 음절 하나만 반복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탄'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해는 했다. 질문을 알아듣고, 감정을 표현하고, 손짓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21년 동안 오직 '탄, 탄'뿐이었다.
그 남자가 병원에 실려 온 지 닷새 만에 숨졌다. 담당 의사는 폴 브로카였다. 브로카는 환자가 죽자마자 부검을 했다. 그리고 뇌의 왼쪽 앞부분에서 손상된 부위를 발견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나머지 뇌는 멀쩡했다. 브로카는 그 자리가 언어를 담당한다고 생각한다. 뇌의 특정 부위가 특정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제시한 순간이었다.
뇌는 하나인가, 여럿인가
브로카가 살았던 시대에는 뇌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있었다. 하나는 뇌가 하나의 통합된 기관으로 모든 기능이 뇌 전체에 균등하게 분산되어 있다는 주장이었다. 다른 하나는 뇌의 각 부위가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하며 이른바 뇌 기능 국재화 이론이었다.
당시에는 전자가 주류였다. 기능 국재화 이론은 골상학이라는 유사과학과 뒤섞여 있었다. 두개골의 모양을 보면 성격과 능력을 알 수 있다는, 지금 보면 황당한 주장이라 그 탓에 뇌의 특정 부위가 특정 기능을 담당한다는 생각 자체가 신뢰를 잃고 있었다. 브로카는 그 혼란 속에서 데이터를 들고 나왔다. 단순히 주장이 아니라 뇌 자체를 보여주었다.
브로카는 탄의 뇌를 보존했고 학회에 들고 갔다. 뇌를 직접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 자리가 언어를 만든다고. 이후 브로카는 비슷한 증상을 가진 환자 여덟 명의 뇌를 더 조사했다. 모두 같은 자리인 왼쪽 전두엽의 특정 부위에 손상이 있었다. 그 부위는 지금도 브로카 영역이라 불린다.
탄이 말하지 못한 것들
탄은 21년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 21년이 어떤 시간이었을지를 생각해본다. 그는 듣고 이해했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았다. 감정도 있었고,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말로 꺼낼 수 없었다. '탄'이라는 음절 하나가 분노일 수도 있었고, 슬픔일 수도 있었고, 감사일 수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탄' 하나에 갇혀 있었다.
언어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이다. 생각을 밖으로 꺼내는 도구, 타인과 연결되는 다리, 자신의 경험을 시간 너머로 전달하는 수단이다. 그 언어를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세계와 연결하는 능력을 잃는 것이다. 탄은 그 연결이 끊어진 채로 21년을 살았다. 브로카는 그 비극적인 삶에서 과학의 실마리를 찾았다.
외과의사이자 인류학자
폴 브로카는 1824년 프랑스 남부 생트푸아라그랑드에서 태어났다. 의사 집안이었고, 그 역시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스물한 살에 의학 학위를 받았고, 스물네 살에는 외과 수술을 집도했다. 뛰어난 외과의사였지만, 그의 관심은 수술실 너머까지 뻗어 있었다.
브로카는 인류학에도 깊이 빠져들었다. 두개골을 수집하고 측정했다. 다양한 인종과 집단의 뇌 크기를 비교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문제 있는 연구도 있었다. 그는 두개골 크기와 지능의 관계를 주장했는데, 이 주장은 후대에 인종차별적 목적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브로카 자신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지만, 과학적 발견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그러나 언어와 뇌에 관한 그의 연구는 달랐다. 이것은 편견이 아니라 관찰에서 나온 것이었다. 탄의 뇌, 그리고 이후 여덟 명의 뇌는 브로카의 뇌 연구의 방향을 잡아주었다.
뇌과학의 첫 번째 지도
브로카의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언어 영역을 찾아냈기 때문이 아니다. 뇌를 지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보여줬기 때문이다. 뇌의 각 부위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는 것이 확립되면서 뇌과학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후 칼 베르니케는 언어를 이해하는 영역을 발견했다. 브로카 영역이 말하기를 담당한다면, 베르니케 영역은 듣고 이해하는 것을 담당했다. 두 영역이 연결되어 인간의 언어가 작동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20세기 들어 뇌 영상 기술이 발전하면서, 브로카가 손으로 더듬어 찾아낸 그 영역이 실제로 언어 처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거듭 확인됐다.
브로카는 1880년,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뒤 동료들은 그의 뇌를 보존했다. 언어 영역을 발견한 사람의 뇌는 지금도 파리의 뒤피트랑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뇌과학의 역사가 시작된 자리를, 그 역사를 만든 사람의 뇌가 지키고 있는 셈이다.
탄이 남긴 것
탄은 이름도 없이 살다 갔다. 사람들은 그를 그가 낼 수 있는 유일한 소리로 불렀다. 그런데 그 이름 없는 남자가 뇌과학의 역사를 바꿨다. 브로카가 그의 뇌를 보존하지 않았다면, 그 발견은 없었을 것이다. 탄의 21년간의 침묵이, 역설적으로 인간의 언어에 대한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됐다.
과학은 종종 비극적인 사고, 불행한 환자, 예상치 못한 관찰로 발견되고 증명된다. 그 안에서 세계의 작동 방식에 대한 실마리가 나온다. 브로카는 탄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동시에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왜 이 사람은 21년간 말을 하지 못했는가. 그 질문이 뇌과학의 첫 번째 지도를 만들었다.
지금 우리가 뇌졸중 환자의 언어 장애를 이해하고, 실어증을 치료하고, 언어와 뇌의 관계를 연구할 수 있는 것은 160년 전 파리의 한 병실에서 탄이 내뱉은 그 단음절에서 시작됐다. 탄, 탄. 그 두 글자가 뇌과학의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