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퍼셀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곡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잠시 머뭇거린다. 헨델? 하지만 헨델은 독일인이다. 엘가? 홀스트? 브리튼? 그 이름들이 오가는 동안, 정작 가장 먼저 불려야 할 이름이 뒤로 밀린다. 그 이름은 바로 헨리 퍼셀이다. 영국이 낳았지만 영국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이다. 퍼셀을 이해하려면 그가 살았던 시대부터 봐야 한다. 그것은 영국 음악이 한 번 크게 꺾인 뒤 다시 일어서려던 시대였다. 그리고 퍼셀은 그 회복의 정점에서, 너무 일찍 사라졌다.
르네상스 영국의 음악 황금기
16세기 영국은 음악적으로 풍성했다. 헨리 8세 자신이 작곡가였고 악기를 여러 개 다뤘다. 왕실이 음악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이 시기 영국에는 뛰어난 작곡가들이 있었다. 토마스 탈리스는 40성부 합창곡을 썼고, 윌리엄 버드는 영국 르네상스 최고의 작곡가로 불렸으며, 존 다울랜드의 류트 음악은 유럽 전역에서 유행했다.
특히 마드리갈이 꽃을 피웠다. 여러 성부가 얽히는 성악 앙상블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됐지만 영국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런던 사람들은 집에서 마드리갈을 함께 노래하는 것을 교양의 기본으로 여겼다. 음악은 귀족만의 것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였다.
청교도 혁명이 음악을 멈췄다
그런데 17세기 들어 영국은 종교와 정치의 격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헨리 8세의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갈등이 깊어졌고, 청교도들은 교회 음악 자체를 사치로 봤다. 악기를 교회에서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642년, 올리버 크롬웰의 청교도 혁명이 일어났다.
이 시기에 극장이 폐쇄됐다. 오페라는 물론 연극도 금지하며 음악가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유럽 대륙에서 이탈리아 오페라가 화려하게 꽃피던 바로 그 시기에, 영국은 음악 자체를 억압하고 있었다. 몬테베르디가 베네치아에서 걸작을 쏟아내고, 륄리가 파리 궁정을 음악으로 채우던 그 20년 동안, 영국의 음악은 멈춰 있었다.
1660년 찰스 2세가 왕정복고를 이루면서 음악이 다시 허용됐지만 공백이 너무 길었다. 프랑스 망명 시절을 보낸 찰스 2세는 프랑스 음악에 익숙해 있었고, 귀국 후 영국 궁정에 프랑스식 음악을 들여왔다. 영국 음악은 자국의 전통을 이어가는 대신 대륙을 모방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그 혼란 속에서 퍼셀이 태어났다.
열여덟 살의 웨스트민스터 오르가니스트
헨리 퍼셀은 1659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왕실 예배당 소년 합창단에서 음악을 배웠고, 열여덟 살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오르가니스트가 됐다. 지금으로 치면 대학교 2학년 나이에 국가 최고 성당의 음악 감독이 된 것이다. 재능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퍼셀은 이탈리아 바로크의 기법을 흡수했다. 프랑스의 우아함도 배웠다. 하지만 그는 모방에 머물지 않았다. 영국 고유의 언어 감각, 영국 음악의 전통적인 화성 언어, 그리고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영국 문학의 정서를 결합했다. 이탈리아도 아니고 프랑스도 아닌, 완전히 영국적인 바로크 음악을 만들어냈다.
디도의 탄식 — 슬픔의 가장 단순한 형태
1689년, 퍼셀은 '디도와 에네아스'를 작곡했다. 영국 최초의 진정한 오페라로 불리는 작품이다. 트로이의 영웅 에네아스와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 에네아스가 떠나고 혼자 남은 디도가 부르는 마지막 아리아 '디도의 탄식'은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슬픔의 음악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아리아의 구조는 단순하다. 낮은 현악기가 같은 베이스 선율을 반복한다. 그 위에 디도의 목소리가 얹힌다. 반복되는 베이스는 운명처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계속 흐른다. 목소리는 그 위에서 몸부림치다가 결국 가라앉는다. 단순한 구조가 오히려 더 깊은 슬픔을 만들어낸다. 퍼셀은 복잡한 기교 대신, 가장 단순한 형태로 인간의 감정을 꿰뚫었다.
36세에 남긴 것들
퍼셀은 1695년,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추운 밤에 집에 들어오지 못해 얼어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결핵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는 평생 음악을 만들었던 바로 그 자리,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36년이라는 짧은 생애에 그가 남긴 것은 방대하다. 오페라, 반오페라, 교회 음악, 왕실 음악, 실내악, 건반 음악 등 어마하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원작으로 한 '요정 여왕'은 영국 문학과 영국 음악이 만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다. 그가 더 살았더라면 어떤 음악이 나왔을지를 생각하면, 그 죽음이 더욱 아쉽다.
빈자리를 채운 독일인
퍼셀이 죽은 후 영국 음악은 다시 공백에 빠졌다. 그의 계보를 이을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1710년, 독일에서 온 젊은 작곡가가 런던에 도착했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었다. 헨델은 영국에서 살며 영국식 이름을 쓰고, 영국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결국 영국 음악계를 100년 넘게 지배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헨델이 영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토대를 퍼셀이 닦아놓았다는 것이다. 영국 관객들이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에 익숙해진 것은 퍼셀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열매는 퍼셀이 아니라 헨델이 거뒀다. 그리고 헨델의 그늘 속에서 퍼셀은 오랫동안 잊혔다.
20세기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이 퍼셀을 재발견하고 그의 음악을 현대에 소개하기 전까지, 퍼셀은 영국 음악사의 각주에 머물렀다.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곡가가, 정작 영국에서 잊혀진 채로 200년을 보낸 것이다. 역사는 때로 이렇게 불공평하다. 하지만 음악은 남는다. 디도의 탄식은 오늘도 울린다. 300년 전 퍼셀이 그 단순한 베이스 선율 위에 얹었던 슬픔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