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하나의 큰 사건이 있다. 이것이 부활이다. 부활절은 그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이 이 사건 위에 세워져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말했다. 즉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는 없고 그만큼 이 사건은 신앙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부활은 무엇인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무언가인가. 그리고 왜 하나님은 죽음이라는 길을 선택하셨는가. 부활절 앞에 서면 이 질문들이 떠오른다.
왜 죽음이어야 했는가
부활을 이해하려면 먼저 죽음을 이해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었다. 성경은 이것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다고 말한다. 창세 전부터 계획되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 길을 택하셨는가.
신학자들은 이것을 대속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해왔다. 인간의 죄는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한다. 그런데 인간 스스로는 그 값을 치를 수 없고 죄를 지은 존재가 죄의 값을 완전히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 없으신 존재가 대신 그 대가를 치워한다. 바로 완전한 희생.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인간을 위해 죽으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사랑이다. 로마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한다. 죽음은 사랑의 극단적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 죽음이 끝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활은 그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선언이 된다.
빈 무덤이 말하는 것
부활절 아침,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이 무덤으로 갔다. 그들은 시신에 향품을 바르러 갔다. 죽음을 정리하러 간 것이다. 그런데 무덤이 비어 있었다. 돌이 굴려져 있었고, 시신은 없었다. 천사가 말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빈 무덤은 부활 신앙의 물리적 근거다. 예수의 시신이 무덤에 있었다면, 당시 유대 지도자들이나 로마 당국은 그것을 꺼내 보여줌으로써 부활 소문을 한순간에 잠재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무덤이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시신을 훔쳤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목숨을 걸고 거짓말을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 제자들 대부분은 부활의 증인으로서 죽음을 택했다.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 아니었다. 나사로도 죽었다가 살아났지만, 그는 다시 죽었다. 예수의 부활은 달랐다. 썩지 않는 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 방식, 그러면서도 상처 자국이 남아있는 실체적 몸을 증명했다. 부활은 이전 삶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존재 방식의 시작이었다.
부활이 전하는 메시지
부활은 단지 예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울은 부활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불렀다. 첫 열매는 뒤따라올 것들의 시작이다. 예수의 부활은 인류의 부활을 향한 첫 번째 문이 열린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전혀 다른 시각을 열어준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지금 이 삶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고통이 마지막이 아니라면, 고통을 견디는 방식이 달라진다. 불의가 이 세상에서 심판받지 않더라도, 그것이 완전한 끝이 아니라면, 정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부활 신앙은 단순한 사후세계에 대한 희망이 아니다. 지금 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근거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한 말이 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 말은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삶과 죽음 모두를 다른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부활 신앙이 삶의 방식을 바꾼다.
부활절 아침의 의미
부활절은 봄에 온다. 겨울이 끝나고 생명이 다시 돋아나는 계절이다. 자연의 순환과 부활의 메시지가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죽은 것처럼 보였던 땅에서 새순이 올라오듯, 죽음이 끝처럼 보였던 그 자리에서 생명이 시작됐다.
그러나 부활절의 기쁨은 단순한 봄의 기쁨이 아니다. 그것은 고난 주간을 통과한 후에 오는 기쁨이다. 겟세마네의 기도, 배신, 십자가의 고통, 무덤의 침묵, 이 모든 것을 통과한 후에 맞이하는 부활의 아침의 기쁨은 고통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고통을 통과했기 때문에 더 깊다.
부활절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이것이다. 당신은 무덤 앞에서 무엇을 보는가. 여인들은 시신을 정리하러 갔다가 빈 무덤을 만났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시작을 만난 것이다. 부활 신앙은 끝처럼 보이는 것들 앞에서 다르게 보는 눈을 준다.
죽음도, 실패도, 상실도 이 모든 것은 마지막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눈이 부활절 아침이 우리에게 건네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