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해 속의 피아노
1944년 바르샤바는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들, 연기가 피어오르는 거리, 죽은 자들이 널린 도시였다. 그 잔해 속 어느 무너진 건물 안에서 한 남자가 피아노를 친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 아니, 들을 수 없다. 소리를 내면 들킬 수 있기 때문에 그는 건반을 누르면서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침묵 속의 연주는 손가락이 건반 위를 움직이지만 음악은 그의 머릿속에서만 울린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2002년 영화 '피아니스트'는 폴란드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의 실화를 담은 작품이다. 바르샤바 게토에서 홀로코스트를 살아남은 한 음악가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묻는 것은 단순히 '어떻게 살아남았는가'가 아니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하는가'다.
음악은 무엇인가
슈필만은 전쟁 전 폴란드 라디오의 피아니스트였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시작되던 날, 그는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쇼팽을 연주하고 있었다. 폭격으로 방송이 끊기는 순간까지 그는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것이 영화의 시작이다.
이후 슈필만은 모든 것을 잃어간다.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자유를 잃는다. 바르샤바 게토에서 살아남기 위해 식당에서 피아노를 치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숨어다닌다. 피아노도 없어 음악을 연주할 수 없지만 음악은 그를 떠나지 않는다. 아니, 그가 음악을 놓지 않는다.
무너진 건물 안에서 소리 없이 건반을 두드리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 중 하나다. 음악은 이미 위로의 도구도 생존의 수단도 아니다. 그것은 그가 여전히 인간임을 스스로에게 확인하는 행위다. 모든 것이 무너져도 음악이 있다. 아니, 음악을 기억하는 내가 있다. 그 확인이 그를 버티게 한다.
적이 건넨 손
영화의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독일 장교 빌름 호젠펠트와의 만남이다. 슈필만이 숨어있던 폐허에서 호젠펠트가 그를 발견한다. 유대인임을 알면서도 그는 슈필만을 신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따뜻한 외투를 건네며, 그가 숨을 수 있도록 돕는다.
왜 그랬는가. 호젠펠트는 슈필만에게 직업을 묻는다. 피아니스트라는 대답을 듣고, 연주를 부탁한다. 스필만이 쇼팽의 발라드를 연주하는 순간 — 오랫동안 피아노를 치지 못했던 손이 건반 위에서 움직이는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가 흐른다. 적과 적. 점령자와 피점령자. 가해자와 피해자. 그 모든 경계를 넘어, 음악이 두 인간을 인간으로 연결한다.
호젠펠트는 전쟁이 끝난 후 소련군에 체포되어 포로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슈필만은 그를 구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선한 행동이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는 그 불공평함을 남겨두었다. 하지만 호젠펠트의 행동은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선함은 어디서 오는가. 극단적인 악의 시스템 안에서도 인간이 인간을 선택할 수 있는가. 영화는 그 질문에 독일 장교 호젠펠트를 통해 '그렇다'고 답한다.
살아남는다는 것의 무게
전쟁이 끝났다. 슈필만은 살아남았지만 영화는 그 이후를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텅 빈 바르샤바, 가족이 없는 도시로돌아온다. 자신이 연주하던 라디오 스튜디오로 돌아가 다시 쇼팽을 연주한다. 그 연주는 기쁨인가, 슬픔인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짐이 있다. 왜 나는 살아남았는가. 함께 끌려간 가족들은 죽었는데,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 하지만 슈필만은 그 질문을 안고 피아노 앞에 앉는다. 살아있다는 것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음악이 여전히 거기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위해 그는 앞으로 나아간다. 완전한 회복이 아니라, 계속하는 것.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방식이다.
예술이 남는 이유
폴란스키는 이 영화를 만들며 자신의 경험을 담았다. 그 역시 유대인으로 크라쿠프 게토에서 살아남았다. 어머니는 아우슈비츠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슈필만의 이야기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살아남은 자가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이 영화의 또 다른 층위다.
영화 '피아니스트'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을 인간으로 붙들어두는 것이 있다. 그것은 권력도 돈도 아니다.
슈필만에게 그것은 음악이었다. 소리 없이 건반을 두드리는 행위, 기억 속에서 쇼팽을 흘리는 것. 예술은 생존의 도구가 아니었다.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한 마지막 언어였다.
바르샤바의 잔해 속에서도 음악은 있었다. 아무도 듣지 않아도, 소리를 낼 수 없어도, 건반 위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그 손가락이 한 인간을 살아있게 했다. 그리고 그 음악이 적군 장교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간절한 예술이 가장 어두운 곳에서 인간을 연결하고, 인간을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