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인문학 38

공존의 도시, 살로니카

by Polymath Ryan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들을 이야기할 때, 아테네가 먼저 나온다. 그리고 로마, 파리, 런던이 뒤를 잇는다. 살로니카는 그 목록에 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도시는 기원전 315년에 세워졌다.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 여동생 테살로니케의 이름을 딴 도시이다. 2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중해의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살로니카가 특별한 것은 나이 때문이 아니다. 이 도시가 품어온 방식 때문이다. 유대인, 그리스인, 터키인, 불가리아인들이 품어왔다. 어느 한 민족이 다수를 차지한 적 없이,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와 문화가 수백 년간 하나의 도시 안에서 섞였다. 그 공존이 살로니카를 만들었고, 그 공존의 파괴가 살로니카를 비극으로 이끌었다.


발칸의 예루살렘


1492년, 스페인의 페르디난드 2세와 이사벨 1세가 칙령을 내렸다. 유대인들은 스페인을 떠나거나 기독교로 개종하라는 것이었다. 수십만 명의 유대인이 이베리아 반도를 떠났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오스만 제국으로 향했다. 오스만 술탄 바야지드 2세는 그들을 환영했다. '스페인 왕이 자신의 나라를 가난하게 만들면서 내 나라를 부유하게 해준다'고 했다고 전해진다.


그 유대인들이 정착한 곳 중 하나가 살로니카였다. 그들은 스페인에서 쓰던 언어인 라디노어, 즉 중세 스페인어가 섞인 유대어를 그대로 가져왔다. 살로니카의 거리에서는 400년이 지난 후에도 스페인에서 추방된 날의 언어가 들렸다. 20세기 초까지 살로니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유대인이었다. 그래서 이곳은 '발칸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다.


살로니카의 유대인들은 도시를 만들었다. 항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상인들, 의사들, 학자들은 토요일 안식일에는 항구가 멈췄다. 유대인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도시가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들은 이 도시의 일부였고 도시의 심장이었다.


공존이 만든 도시


오스만 제국 시절 살로니카는 경이로운 방식으로 작동했다. 유대인 구역, 그리스인 구역, 터키인 구역이 있었지만, 그 경계는 막힌 벽이 아니었다. 시장에서는 세 언어가 뒤섞였다. 커피하우스에서는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나란히 앉았다. 서로의 음식을 먹고, 서로의 음악을 들었다.


완벽한 공존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갈등도 있었고, 차별도 있었다. 하지만 이 도시는 다름을 이유로 상대를 추방하지 않고 수백 년간 그렇게 살았다. 그 경험이 어느 한 문화도 아닌, 여러 문화가 겹쳐서 만들어진 특유의 살로니카의 문화를 만들었다.


살로니카는 또한 혁명의 도시였다. 오스만 제국을 개혁하려 했던 청년 투르크당이 이 도시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터키의 건국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태어난 곳도 살로니카였다. 제국을 무너뜨린 혁명가가 제국의 가장 다양한 도시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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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의 봄


1912년 그리스가 살로니카를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탈환했다. 도시의 이름이 테살로니키로 바뀌었다. 터키인들은 떠났지만 유대인들은 남았다. 그들에게 이 도시는 500년의 고향이었다.


1941년 나치 독일이 그리스를 점령했다. 살로니카의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일상을 유지했다. 하지만 1943년 봄, 모든 것이 바뀌었다. 2월부터 8월까지, 살로니카의 유대인 약 5만 명이 아우슈비츠로 이송됐다. 500년간 이 도시를 만들어온 공동체가 단 몇 달 만에 사라졌다. 살아 돌아온 사람은 20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오래된 유대인 공동묘지는 나치 점령 기간에 파괴됐다. 그 자리에 지금 테살로니키 아리스토텔레스 대학교가 서 있다. 캠퍼스 아래에 수천 년의 역사가 모두 묻혀 있다.


공존이 사라진 자리


살로니카는 지금 그리스의 제2 도시다. 활기차고 젊고, 대학 도시의 에너지가 넘친다. 하지만 그 활기 아래에 이 도시가 품었던 것들이 사라진 빈자리가 있다. 그것은 유대인의 언어가 들리지 않는 시장과 터키인의 커피하우스가 없는 골목, 여러 언어가 뒤섞이던 항구는 여전히 비어있다.


살로니카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공존은 가능한가. 이 도시는 수백 년간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땅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런데 그 공존은 외부의 폭력 앞에서 너무 쉽게 무너졌다. 수백 년이 몇 달 만에 사라졌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다름을 이유로 밀어내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난민을 거부하고, 이민자를 추방하고, 소수자를 배제한다. 살로니카의 역사는 그 방향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공존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를, 그리고 한번 사라진 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지를...


발칸의 예루살렘은 지금도 그 이름을 돌려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