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잣거리로 내려간 왕의 화가

단원 김홍도

by Polymath Ryan


1780년대, 지구 반대편 두 도시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파리에서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이성과 자유를 외치며 혁명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모차르트는 빈에서 교향곡을 쏟아냈고, 유럽 전역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새롭게 발견되고 있었다.


그 같은 시간, 한양의 한 화가는 씨름판을 그리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뒤엉킨 두 남자, 구경꾼들의 표정, 엿장수의 뒷모습을 그린 김홍도였다.


유럽이 혁명으로 민중을 발견했다면, 조선은 김홍도의 붓으로 민중을 발견했다.


정조의 조선 — 조선의 르네상스


김홍도가 살았던 시대는 영조와 정조의 시대였다. 18세기 후반 조선은 변화의 한가운데 있었다. 실학이 꽃을 피웠고 성리학의 관념적 세계에서 벗어나 실제 세계를 탐구하는 학문이 일어나고 있었다. 박지원은 청나라를 다녀와 '열하일기'를 썼고, 정약용은 수원 화성을 설계했으며, 박제가는 상업과 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세계를 다르게 보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도 달라졌다. 한글 소설 '홍길동전', '춘향전', '심청전'이 유행했다. 양반의 언어가 아닌 서민의 언어로 서민의 이야기를 쓴 작품들이 퍼졌다. 판소리가 장터에서 울려 퍼졌다. 민화가 서민의 방을 장식했다. 문화의 중심이 사대부의 사랑방에서 저잣거리로 내려오고 있었다.


정조는 이 흐름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규장각을 세워 학문을 장려했고, 뛰어난 인재를 발탁했다. 그 정조가 가장 아꼈던 화가가 김홍도였다. 왕의 어진을 그리고, 궁중 행사를 기록하는 것이 당시 화원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김홍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씨름판으로 내려간 붓


김홍도는 1745년에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왕실 도화서의 화원이 됐다. 스물두 살에 영조의 어진을 그렸고, 정조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그는 왕의 화가였다. 그런데 그는 궁궐 밖으로 나갔다. 씨름, 서당, 대장간, 타작, 빨래터, 주막이 배경이 된 김홍도의 풍속화에는 조선 서민의 삶이 생동감 있게 담겨 있다. 이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그림 속 인물들은 살아있다. 씨름하는 두 남자의 근육, 구경꾼들의 다양한 표정, 서당에서 훈장 몰래 웃음을 참는 아이들. 김홍도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그린 것이 아니라, 그들 속에 들어가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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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림의 주제는 대부분 산수화이거나 선비의 이상적 세계를 담은 그림들인 사군자였다. 서민의 일상을 그린다는 것은 파격이었다. 하지만 김홍도는 그 파격을 자연스럽게 해냈다. 그의 그림에는 가르치려는 의도도, 동정도 없다. 그저 살아있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순간, 생동감이 있다.


같은 시대, 다른 언어


김홍도가 씨름판을 그리던 그 시간, 유럽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민중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과 존엄을 선언했다. 유럽의 민중 발견은 혁명과 사상의 언어로 이루어졌다.


조선의 민중 발견은 달랐다. 혁명이 아니라 문화에서 일어났다. 선언이 아니라 붓끝에서 일어났다. 판소리 한 대목, 한글 소설 한 편, 김홍도의 풍속화 한 장, 이것들이 서민의 삶을 역사 속으로 끌어들였다. 방식은 달랐지만, 두 세계는 오랫동안 역사의 배경이었던 평범한 사람들이 전면으로 나오는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 전환의 한가운데 김홍도가 있었다. 왕의 화가가 저잣거리로 내려갔다는 것은 단순한 취향의 변화가 아니었다. 시대가 변하고 있었고, 김홍도는 그 변화를 가장 예민하게 감지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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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예술은 시대를 담는다


김홍도의 그림이 지금도 살아있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시대를 초월했기 때문이 아니다. 시대를 가장 정직하게 담았기 때문이다. 18세기 조선의 씨름판, 서당의 아이들, 타작하는 농부들의 그 구체적인 장면들이 오히려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닿는다. 보편은 구체 속에 있기 때문이다.


김홍도는 1806년경 세상을 떠났다. 말년에는 가난했다고 전해진다. 왕의 총애를 받았던 화가가 초라한 노년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것은 고스란히 남았다. 씨름판의 함성, 서당의 웃음, 대장간의 불꽃은 200년이 지났지만 그 그림들 앞에 서면 지금도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순간을 그린 화가. 그것이 김홍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