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질은 탐험이다
이 글은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 관한 네 번째 글이다. 같은 주제를 네 번 다루는 것이 반복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동일한 주제를 자꾸 찾게 된다는 것은 그 주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이며, 질문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르테미스는 실제로 계속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다.
2026년 4월 1일, 아르테미스 2호가 발사됐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네 명의 우주비행사가 달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54년 만에 인간이 지구 저궤도 너머로 나간 것이다. 그 사실이 주는 감각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지금 이 순간, 지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인간들이 달의 중력권으로 들어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의 감각
아르테미스 2호에는 네 사람이 타고 있다. 사령관 리드 와이즈먼, 조종사 빅터 글로버, 임무 전문가 크리스티나 코크, 그리고 캐나다 우주비행사 제러미 핸슨. 글로버는 달 탐사에 나서는 최초의 흑인 우주비행사다. 코크는 달 궤도에 진입하는 최초의 여성이다. 핸슨은 지구 저궤도를 넘어가는 최초의 캐나다인이다.
그 네 사람이 지금 어디 있는가. 지구에서 수십만 킬로미터 떨어진 공간에서 창문 너머로 지구가 작아지고 달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경험하는 것을 우리는 완전히 상상할 수 없다. 인간이 그 자리에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고독한 일인지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거기 있다는 사실이, 지구에 남아있는 우리에게 인간은 여기까지 갈 수 있다는 무언가를 전달한다.
아르테미스는 10일간의 임무다. 그리고 달에 착륙하지는 않는다. 달 주위를 자유 귀환 궤도로 돌고 지구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 10일이 다음을 준비한다. 오리온 우주선의 모든 시스템이 실제 우주비행사가 탑승한 상태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검증한다. 섭씨 2800도의 열을 견뎌야 하는 방열판, 생명유지 장치, 심우주 통신망. 그 데이터들이 쌓여야 다음 사람이 달 표면에 내릴 수 있다.
전략이 바뀌었다
처음 이 주제를 썼을 때와 지금 사이에, 아르테미스 계획 자체가 크게 바뀌었다. 원래 계획에는 달 궤도 정거장 '루나 게이트웨이'가 있었다. 달 궤도에 정거장을 세우고, 그것을 거점으로 달 표면과 더 먼 우주를 탐사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2026년 3월, NASA는 루나 게이트웨이 건설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 대신 달 표면 기지를 단계적으로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략이 바뀌었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 국가항천국은 2030년 이전에 유인 달 착륙을 성공시키겠다는 목표 아래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궤도에 머물며 준비하는 것보다, 먼저 달 표면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달의 남극에는 얼음 형태의 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그 물이 있는 곳이 미래 달 기지의 최적지다. 누가 먼저 그 자리를 잡느냐가 이 경쟁의 핵심이다.
우주 탐사가 순수한 과학의 영역에서 지정학적 경쟁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다. 아폴로 계획이 냉전의 산물이었듯, 아르테미스도 시대의 산물이다. 그런데 아폴로와 다른 점이 있다. 아폴로는 달에 깃발을 꽂고 돌아왔다. 아르테미스는 달에 머물려 한다.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거주를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프로그램의 본질이다.
한국이 거기 있다
아르테미스 2호에는 한국의 큐브위성 'K-라드큐브'가 실려 있다. 한국천문연구원과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가 개발했다. 심우주 비행 중 우주방사선이 우주인의 신체와 반도체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것이 임무다.
작은 위성이지만 의미는 작지 않다. 한국이 처음으로 심우주 탐사에 발을 들인 것이다. 2022년 달 궤도선 다누리의 성공이 그 발판이 됐다. 그 작은 큐브위성이 달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 우주 역사의 한 페이지며 그 데이터가 미래의 우주비행사들을 보호하는 데 쓰일 것이다.
네 번째 글을 쓰는 이유
왜 같은 주제를 네 번 쓰는가. 처음에는 아르테미스라는 인간이 다시 달로 간다는 것의 꿈 자체를 썼다. 두 번째에는 그 꿈의 기술적 난관, 예산 문제, 지연되는 일정등 현실적 무게를 썼다. 그리고 세 번째인 그 꿈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순간을 쓴다. 마지막 네 번째는 아르테미스가 가져다 줄 미래를 쓰고 있다.
어떤 주제를 반복해서 찾는다는 것은, 그 주제가 나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아르테미스가 내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왜 자꾸 더 먼 곳으로 나가려 하는가. 지구에서 해결하지 못한 것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달이고 화성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 달을 향해 날아가는 네 사람의 모습에서, 그 답의 일부를 본다. 인간은 지평선이 필요한 존재다. 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과 연결되어 있다. 아르테미스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네 번을 써도, 아직 다 말하지 못한 것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