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 이미 시작된 혁명과 반복의 역사

by Polymath Ryan


1786년 5월 1일, 빈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초연된다. 왕족들과 귀족들은 화려한 옷과 향수를 뿌리고 와서 오페라의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수잔나와 피가로의 이중창이 시작되며 그들은 키득키득 웃기 시작하고, 극이 진행이 될 수록 박장대소를 한다.


초연은 대성공이다. 모차르트는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5막을 삭제하길 잘했다'


그 이유는 첫 악보가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다. 요제프 2세 황제는 대본을 보고는 '바스티유가 무너지지 않는 한, 이 작품은 올릴 수 없다'라며 금지 시켰다. 모차르트는 있는 자들의 비판을 가득 담아놨던 5막을 과감히 지운다. 그리고 오페라는 검열에 통과했다.



그리고 정확히 3년 후, 프랑스에서 바스티유가 무너졌다. 루이 16세의 머리는 광장 단두대의 칼날에 떨어진다.

바로 프랑스 대혁명 1789년이다.


모차르트는 내용이 아닌 음악으로 혁명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 귀족들은 코믹 오페라로 알았던 <피가로의 결혼>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하인 피가로의 음악의 귀족의 미뉴엣을 써줬고, 백작의 아리아에는 경박하고 천한 음악을 써준다. 그리고 4막 피날레에서는 하인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여성(부인)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 당시에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놨다고 생각했지만 모차르트는 이미 혁명을 시작하고 있었다.


----- [보이지 않는 질서를 읽다 -음악편] 중 에서 -----



1794년 7월 파리. 프랑스 혁명이 시작된 지 5년이 지났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바스티유 감옥을 무너뜨렸던 혁명은 이제 스스로의 이상을 삼키고 있었다. 단두대가 쉬지 않고 돌아갔다. 귀족뿐 아니라 혁명의 동지들도, 혁명에 회의를 품은 사람들도 단두대로 보내졌다. 그해 7월 25일, 한 시인이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앙드레 셰니에. 서른한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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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는 1896년 이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들었다. 바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다.


혁명의 이상과 배신, 예술가의 저항, 그리고 죽음을 선택한 사랑을 담은 이 오페라가 100년이 넘도록 무대에서 살아있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나 반복된다.


혁명은 왜 자신을 배신하는가


프랑스 혁명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이상 중 하나를 내걸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다. 왕과 귀족의 특권을 무너뜨리고 인민이 주권을 갖는다. 그 이상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는 혁명이 유럽 전체를 뒤흔들었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하지만 혁명은 공포정치로 변했다. 로베스피에르가 이끄는 공안위원회는 혁명의 적을 찾아 처형했다. 처음에는 귀족과 왕당파였다. 하지만 점점 범위가 넓어졌다. 혁명에 충분히 열성적이지 않은 사람, 혁명의 방향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 심지어 혁명의 동지였던 사람들까지 넓어졌다.


혁명은 자신의 자녀들을 삼켰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혁명이 폭력으로 변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이상은 순수할수록 현실과의 간극이 커지고, 그 간극을 메우려 할수록 더 많은 폭력이 필요해진다고. 자유를 위해 시작한 혁명이 자유를 억압하게 되는 역설이다. 안드레아 셰니에는 그 역설의 한가운데서 죽었다. 시인은 혁명을 노래했다. 하지만 혁명은 시인을 죽였다.


예술가는 권력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페라 속 셰니에는 혁명 초기 귀족들의 연회에서 시를 읊는다. 그의 시는 가난한 민중의 고통을 노래하고, 인간의 존엄을 외친다. 혁명의 이상에 공감한다. 하지만 혁명이 폭력으로 변했을 때, 그는 타협하지 않는다. 혁명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비판하는 글을 쓴다. 그것이 그를 혁명의 적으로 만들었다.


권력은 예술가에게 두 가지를 요구한다. 찬양하거나 침묵하거나. 셰니에는 둘 다 거부했다. 찬양하지도 않았고 침묵하지도 않았고 그 결과는 죽음이었다. 이것은 18세기 프랑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세기 소련에서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음악을 숨겼다. 나치 독일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망명하거나 침묵했다. 예술가와 권력의 관계는 언제나 이 질문을 던진다. 타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셰니에의 가장 유명한 아리아 '어느 맑은 날'에서 그는 노래한다. 삶과 죽음 앞에서도 시인은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단두대 앞에서도 그의 마지막 생각은 시였다. 실제 앙드레 셰니에는 처형 전날 밤 감옥에서 마지막 시를 썼다. 그 시가 남아있다. 권력은 시인을 죽였지만, 시는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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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달레나의 선택 — 사랑과 죽음


오페라에서 귀족 여인 마달레나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든 것을 잃는다. 재산도, 가족도. 셰니에가 단두대를 앞두고 있을 때, 그녀는 처형될 다른 여인과 자리를 바꿔 셰니에와 함께 죽음을 택한다.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는 것을 선택한다.


이 선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무모한 것인가, 숭고한 것인가. 어쩌면 혁명이 모든 것을 빼앗아간 세계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남은 유일한 자유였을지도 모른다. 마달레나의 선택은 절망이 아니라 빼앗길 수 없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 바로 의지다.


오페라의 마지막, 두 사람이 함께 단두대로 걸어가며 부르는 이중창은 죽음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노래다.


혁명 이후에도 반복되는 이야기


안드레아 셰니에가 오늘날에도 무대에 오르는 이유가 있다.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을 내걸고 시작한 운동이 폭력으로 변하는 것, 예술가가 권력 앞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것, 사랑이 죽음 앞에서도 포기되지 않는 것. 이 세 가지는 어느 시대에나 반복된다.


조르다노는 이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들면서 역사의 비극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단두대의 공포를 오케스트라의 긴장으로, 시인의 저항을 테너의 목소리로, 사랑의 선택을 소프라노와 테너의 이중창으로 음악은 역사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1794년 파리의 단두대 앞에서 서른한 살의 시인이 죽었다. 혁명은 그를 적으로 만들었지만, 역사는 그를 시인으로 기억한다. 권력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남긴 것까지 죽일 수는 없다. 안드레아 셰니에가 그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