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꿈
자녀에게 무엇을 바라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부모는 잠깐 머뭇거린다. 그리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말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 취업 소식이 들리는 날, 부모의 눈빛이 달라진다. 말과 마음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가 부모의 꿈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이 질문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가. 자녀의 입장에서도, 부모의 입장에서도. 대부분은 묻지 않는다. 기대는 말해지지 않은 채 전해지고, 꿈은 설명되지 않은 채 이어진다. 그 침묵 속에서 많은 것이 오해되고, 많은 것이 상처가 된다.
시대가 만든 꿈
한 세대 전의 부모들에게 꿈은 명확했다. 좋은 대학, 안정적인 직장, 경제적 풍요가 꿈이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들이 그것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난과 전쟁을 겪은 세대,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세대였기에 그들에게 자녀의 대학 합격 통지서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살지 못한 삶이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그 꿈은 틀리지 않았다. 절박한 현실에서 나온 절실한 소망이었다. 하지만 그 꿈이 자녀에게 전달되는 방식이 문제였다. 설명 없이 전해졌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 왜 좋은 직장이 중요한지 이야기하기보다, 그냥 해야 하는 것이 됐다. 부모의 두려움이 자녀의 의무가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모의 꿈은 자녀에게 짐이 됐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꿈이 이루어졌을 때 부모는 만족했을까. 좋은 대학에 들어간 자녀를 보며 부모는 기뻐했다. 하지만 그 기쁨 뒤에 또 다른 기대가 따라왔다. 좋은 직장, 좋은 결혼, 좋은 집...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다음으로 미뤄졌다. 어쩌면 그 꿈은 처음부터 도달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말과 마음의 차이
지금 세대의 부모들은 다르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녀에게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한다. 성적보다 과정이 중요하고, 직업보다 보람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자녀가 좋은 성적을 받으면 칭찬하고, 그렇지 않으면 걱정한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면 안도하고, 불안정한 길을 선택하면 염려한다. 말로는 행복을 바란다고 하면서, 행동으로는 안정을 바란다. 말과 마음이 다른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부모의 걱정은 진짜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렵고, 그 두려움이 기대로 표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녀는 그 차이를 느낀다. 부모가 말하는 것과 부모가 반응하는 것이 다를 때, 자녀는 혼란스럽다. 무엇을 믿어야 할까. 부모의 말인가, 부모의 눈빛인가. 그 혼란 속에서 자녀는 결국 눈빛을 선택한다. 말이 아니라 반응에 맞추는 삶을 산다.
가장 깊은 곳의 꿈
하지만 부모의 꿈 중에는 학벌도 직장도 아닌 것이 있다. 말로 표현하지 않는, 어쩌면 부모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꿈,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포기한 사람,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현실에 밀린 사람, 다른 삶을 살고 싶었는데 살지 못한 사람, 그 이루지 못한 꿈이 자녀 안에서 싹트는 것을 볼 때, 부모는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느낀다.
그것은 대리만족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그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다. 내가 살지 못한 삶을 네가 살아주는 것, 내가 두고 온 것을 네가 가져가는 것, 그 감각은 단순한 욕심이 아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야 가능한 화해다. 포기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는 순간 부모는 자신의 삶이 끊기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다.
자녀가 음악을 하는 것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자녀의 그림 앞에서 오래 서 있는 부모가 있다. 자녀가 자기답게 사는 것을 보며 조용히 웃는 부모가 있다. 그 눈물과 그 미소 안에 부모의 가장 깊은 꿈이 있다. 좋은 학벌도 좋은 직장도 아닌, 내가 갖지 못했던 자유를 네가 갖는 것이 부모의 꿈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
우리는 부모의 꿈을 물어본 적이 있는가. 어릴 때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무엇을 포기했는지, 무엇을 아직도 그리워하는지를 말이다. 대부분은 묻지 않는다. 부모는 부모로서만 존재했고, 꿈을 가진 한 인간으로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부모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꿈을 자녀 앞에서 꺼내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이다. 혹은 이미 포기한 것을 다시 꺼내는 것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의 꿈은 침묵 속에 있다. 말해지지 않은 채, 전해지지 않은 채,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 부모의 이루지 못한 꿈은 자녀의 어딘가에 심어진다. 의식하지 못한 채 물려받은 감각, 설명할 수 없는 끌림, 남들과 다른 무언가에 대한 열망이 부모의 꿈이 흘러간 자리다. 자녀가 그것을 이루는 순간, 부모의 꿈도 완성된다. 한 세대가 아니라 두 세대에 걸쳐서 그것이 부모의 꿈이 자녀에게서 이루어진다는 것의 진짜 의미다.
부모님도 부모가 처음이고 자식도 경험하지 못한 채 부모가 된다. 그리고 내 자식도 그 처음을 겪을 것이다. 그 순리 안에서 인내를 배우고 침묵을 배운다. 그리고 자식은 부모가 돼서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리고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내 자식에게 베푼다.
물론 모든 부모가, 자식이 다 그렇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그 내리 사랑을 잃어리는 순간 세상을 가치있게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늘 기억해내야 하며 늘 가슴 속에 담아놔야 하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