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본 화가

겸재 정선

by Polymath Ryan


조선의 화가들은 오랫동안 실제로 가본 적도 없는 중국의 산을 그렸다.중국 화보에서 익힌 기법으로, 중국의 이상향을 화폭에 옮겼다. 그것이 당시의 기준이었고 격조였다. 좋은 그림이란 중국의 방식을 잘 따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18세기 초, 한 화가가 그 관행을 깨뜨렸다. 붓을 들고 금강산으로 향했다. 상상 속의 산이 아니라, 실제로 발로 걷고 눈으로 본 조선의 산을 그리기 위해. 그가 겸재 정선이었다.


정선이 산을 오르던 그 시간, 지구 반대편에서는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하고, 바흐가 음악을 정리하고,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이성으로 세계를 설명하려 하고 있었다. 동양과 서양이 같은 시대에, 각자의 방식으로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자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같은 시대, 다른 언어


겸재 정선은 1676년 한양에서 태어났다. 그가 살았던 18세기는 조선에서 실학이 꽃피던 시기였다. 성리학의 관념적 세계에서 벗어나 실제 세계를 탐구하는 학문. 박지원은 청나라를 다녀와 현실을 직시하는 글을 썼고, 정약용은 실용적 학문을 추구했다. 세계를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보자는 흐름이 조선을 관통하고 있었다.


서양도 같은 흐름이었다. 정선이 열한 살때인 1687년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관찰해서 우주의 법칙을 발견하며 프린키피아를 출판했다. 관찰이 이론을 정립한다는 시대였다. 같은 해 동양과 서양에서, 눈으로 보는 것의 가치가 새롭게 발견되고 있었다. 정선이 금강산을 직접 오르며 그림을 그린 것과, 뉴턴이 자연 현상을 직접 관찰한 것은 같은 시대정신의 서로 다른 표현이었다.


바흐(1685~1750)는 정선과 거의 동갑이다. 한쪽에서는 조선의 화원이 금강산의 웅장한 바위를 수직의 붓질로 담아내고, 다른 쪽에서는 독일의 음악가가 푸가의 엄격한 구조 안에 풍부한 감정을 담아냈다. 둘 다 자신만의 언어로 세계를 표현했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을 가장 정직하게 담아내는 언어가 달랐을 뿐, 방향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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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산수화 — 조선의 눈


정선이 창안한 진경산수화의 핵심은 간단하다. 실제 경치를 직접 보고 그린다는 것이지만 그 단순한 원칙이 당시에는 혁명이었다. 조선의 화가들은 중국 화보를 교본으로 삼아 중국식 이상향을 그렸고 조선의 산을 그리면서도 중국의 기법으로 중국식 구도를 따랐다. 정선은 그 관행을 깨뜨렸다.


그는 금강산을 수십 차례 올랐다. 한양 주변의 산과 강도 직접 걸으며 그렸다. 인왕산, 북한산, 한강. 그가 그린 인왕제색도는 비 온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왕산을 담은 작품이다. 웅장한 화강암 바위가 먹의 농담으로 살아났다. 그 바위는 중국 어딘가의 상상 속 바위가 아니다. 지금도 서울 종로구에 서 있는 실제 바위다.


정선의 기법도 독창적이었다. 수직으로 내리긋는 붓질로 금강산의 날카로운 암봉을 표현했다. 중국 그림에는 없는 방식이었다. 조선의 땅이 새로운 기법을 만들어낸 것이다. 대상이 기법을 결정한 것이지, 기법이 대상을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진경산수화의 본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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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세까지 붓을 놓지 않은 사람


정선은 1759년 여든네 살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장수였다. 그리고 그는 생의 마지막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말년의 작품들에는 오히려 더 자유롭고 대담한 필치로 기교를 넘어선 경지, 오랜 세월이 만든 자유로이 보인다.


그의 그림 중 상당수는 친구들을 위해 그린 것이었다. 친구가 여행을 떠나면 그 여행지의 그림을 미리 그려 선물했다. 친구가 그리워하는 고향 산천을 그려줬다. 그림이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언어였다. 그 따뜻함이 정선의 그림 안에 있다.


정선과 동시대를 살았던 서양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이성으로 세계를 설명하려 했다. 볼테르, 루소, 로크. 그들의 언어는 논리와 개념이었다. 정선의 언어는 붓과 먹이었다. 하지만 둘 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 한다는 점에서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었다.


조선의 땅이 조선의 그림이 되다


정선 이전에도 조선의 화가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중국의 눈으로 조선을 봤다. 정선은 처음으로 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봤다. 그 차이가 전부였다. 같은 산을 보면서, 같은 붓을 들면서, 전혀 다른 그림이 나왔다.


그것이 정선이 조선 회화사에서 차지하는 자리다. 단순히 새로운 화풍을 만든 것이 아니라, 조선 사람이 조선의 땅을 보는 눈을 만들었다. 금강산을 보면서 중국의 산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금강산 그 자체를 보게 만든 것. 그 눈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우리의 땅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우주의 법칙을 발견했듯, 정선은 금강산의 바위를 보고 조선 회화의 언어를 발견했다. 직접 보는 것, 그 단순한 행위가 세계를 바꾼다. 18세기 동양과 서양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