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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Jul 22. 2024

 살아야 해서, 살면서, 살아지게 된 이야기

어반빌리지 라이프 - 더자란 이은주 대표

농업·농촌을 도시민이 바꾼다고?

도시와 농촌은 다르다. 그것도 아주 이질적으로 다르다. 

속도가 다르다. 공동체문화가 존재하고 있는, 최근에는 그마저 붕괴되고 있지만, 농촌은 더디게 움직인다. 

시선이 다르다. 외지에서 들어온 젊은 도시민을 바라보는 시선은 좋게 말하면 걱정이고,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이다.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농촌에 들어와서 그들은 ‘친환경’ 농사를 빙자한 잡초농업을 한다. 평생 농사를 지어오던 이들에게 풀 하나 잡지 못하고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젊은 것들이 그리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서로 눈치를 보지만, 잘 견디기란 쉽지 않은 문제이다.

외부 유입이 적은 농촌에서 어떻게 하면 잘 화합이 되고 융합이 될 수 있을까?     

프로N잡러 이은주 대표


어반빌리지라이프(Urban Village Life) 월례회

뭔가 굉장히 접근하기 어려울 것만 같은, 나는 가면 안될 것만 같은 제목이지만 어반 빌리지라이프는 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도시민과 나누는 도농공감의 장이다. 농촌과자치연구소에서 매달 말쯤에 진행하는 어반라이프빌리지 월례회는 지난 5월에는 대아미 사람들, 지난 6월에는 시골에서 프로 N 잡러로 살아가기라는 제목으로 ‘더자란여성농업회사법인 이은주 대표’의 파란만장 스토리가 진행됐다.     


살아야 해서살면서살아지게 된 이야기

어반라이프빌리지의 주인공인 이은주 대표는 “남편도 없고, 직업도 없고, 돈도 없고, 건강도 없었던 30대 후반의 여성이 고향인 충남 보령에서 살아야 해서, 살면서, 살아지게 된 이야기”를 전했다.

시간 순서대로 축약해서 정리하면 ① 고등학교 국어교사가 되다 → ② 고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해외 선교를 갔다 → ③ 몸이 아파 고향 보령에 내려왔다 → ④ 집에서 휴식 겸 요양을 하다가 시장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 ⑤ 농업회사법인 더 자란을 설립해 소규모 농가의 농산물 판매를 시작했다 → ⑥ 그러다 보니 농사도 조금씩 시작하게 되었다 → ⑦ 르 꼬르동 블루에서 요리를 배워 → ⑧ 지역의 할머니들에게 프랑스 요리를 가르치고 → ⑨ 강의를 하고 → ⑩ 책을 읽고 쓰고 = 결국은 몸이 하나라서 아쉬운 프로 N 잡러가 됐다. 물론 사이사이에는 미쳐 설명하지 못한, 정말 재미있고 눈물나는 이야기들이 많다.     


번과 번 사이의 이야기

사진출처: https://www.instagram.com/__zaran

“몸이 아파 집에 내려오게 됐습니다. 집에서 쉬고 있는 저에게 어머니가 하나의 미션을 주셨습니다. 너는 동네 기사가 돼라! 옹기종기 앉아 계시던 동네 할머니들을 태우고 시장에 모셔다드리고, 장을 다 보신 할머니들을 다시 모셔오는 일을 했습니다. 작은 소농이었던 할머니들이 장날에 힘들게 물건을 파는 것을 보고, ‘내가 팔아드려야겠다’라고 생각해 농산물을 지퍼백에 담아 붓펜으로 정성껏 설명을 쓰고, 중고나라에 떡~ 하니 상품을 올렸습니다. 당연히 팔리지 않았죠. 그래서 다음에는 샐러드 구독 서비스도 하고……. 장사를 해보지 않고, 물어볼 사람도 없고, 어떻게 유통과 판매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냥 부딪히기 시작했습니다.”     


인스타그램세상과 연결되는 접점을 만들다

“가게가 없어도, 돈이 없어도, 나를 좋아해 주면 내 것을 사준다.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입니까? 처음에는 물건을 팔기보다는 나의 이야기, 내 주위에 동네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대표는 인스타그램을 100% 활용했다. 양파를 캐는 모습, 동네 할머니들과의 이야기, 농사를 지으며 투닥투닥 거리는 내용을 라이브로 전하기 시작했고, 사람 냄새 풍기는 인스타그램은 점차 팔로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의 농산물을 조금씩 팔아서 바가지도 사드리고, 햄버거도 사드리고…. 이렇게 하다 보니 유명 인플루언서와 연결이 되어서 점차 농산물 판매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이은주 대표는 주위에 농부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고, 스토리를 입혔다. 영상을 만드는 제작비나 엽서를 만드는 것도 돈을 받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https://www.instagram.com/__zaran


나를 위한 밥을 먹는다내일도 먹는다

SNS를 통해 소비자와 소통하며 농산물을 판매하던 이은주 대표는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 많은 감자를 어떻게 팔까? 이 감자로 무엇을 해 먹을 수 있을까? 양송이는 누가 사 먹지? 청양고추는 다 누가 사 먹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 선택한 것이 바로 요리였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르꼬르동 블루에서 요리를 배운 이 대표는 보령에서 할머니들을 상대로 쿠킹클레스를 개설했다. 파인다이닝 스타일의 고급 요리를 보령에서 시작한 것이다.

“누구를 위한 요리일까요? 바로 나를 위한 요리입니다. 어르신들이 한 번도 먹지 못했던 요리를 보령에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SNS와 카메라로 이쁘게 사진 찍는 것을 알려 드렸습니다. 예쁘게 플레이팅하고 멋진 음식을 먹는 모습을 할머니들이 스스로 SNS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껏 남을 위한 밥상만을 차렸던 어르신들은 너무나 즐겁게 음식을 만들고,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린다. 자연스럽게 스타벅스에 가서 라떼를 마시는 것이 낯선 경험이 아니게 되었다.

더 자란 이은주 대표 덕분이다.     

파란만장한 이 대표의 스토리는 끊이질 않는다. 귀농에 대한 강의부터, 책을 직접 쓰기도 하며 보령에서 프로 N잡러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누구나 농촌에서 살 필요는 없지만, 누구나 농촌에서 살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며 “지역에서 각자의 역할을 찾아 많은 이들이 농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에필로그... 공간을 준비하다

도시나 시골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능력을 보여줄 때까지 그 사람을 믿지는 않습니다. 또한, 그 능력도 조금만 표현해야 미움을 받지 않죠. 100이 필요하면 90을 보여주고, 나머지 10은 로컬, 즉 지역에서 채워야 합니다. 

작은 공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컨테이너로 살 집을 짓고, 그 밑에 쿠킹클래스를 위한 주방, 그리고 목공방을 만들고, 이 곳에서 밥도 해서 먹고, 커피도 먹고, 머물면서 보령을 볼 수 있게 하는 공간을 준비 중입니다.

저는 로컬의 소식을 전해주는 비둘기가 되고 싶습니다. 건강한 먹거리와 쉴거리, 놀거리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로컬이 너무 촌스럽지 않게, 징검다리가 되도록, 너무 무겁지 않은, 그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로컬의 이야기를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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