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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in Feb 04. 2018

20대 이후 해외생활의 다섯 단계

어학연수부터 이민까지

항공유류세의 하락과 저가항공사들의 출범으로 해외여행 가는 것이 예전만큼 어렵지 않아졌다. 20대 초반 대학생들은 학기 중 휴학을 통해 한 달간 유럽여행 (요즘은 한 달간 유럽살이도 유행이더라), 워킹홀리데이, 어학연수, 교환학생 등을 경험하고 있다.


한국에서 처음 취업준비를 했을 때 자기소개서 항목에 외국생활을 했던 것들을 기입했고, 면접장에 가서도 그 경험들을 잘 살려서 면접 질문에 대답하면 되겠지.. 했었는데 정말 면접장에 한 두 명은 복사해서 붙인 것처럼 내가 하려던 얘기를 미리 해버려서, 막상 내 차례가 되면 그 경험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교환학생을 통해 국제적 감각을 익히고,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자립심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고..."


이처럼 성인이 된 후 상대적으로 짧게는 6개월 남짓, 길게는 몇 년간 해외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도 그들 중 한 명으로 20대에 겪게 되는 해외생활은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눠진다고 생각해 보았다.



1.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


20대 초반 모아둔 아르바이트비를 털어 조금은 저렴하게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가거나 호주/뉴질랜드/영국 등 영어권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간다. 부모님이 지원해주시는 경우 미국/캐나다/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가는 사람들도 있고, 영어권이 아니라도 유럽 문화를 체험해보고 싶은 경우 유럽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도 한다.

한국과 다른 모든 것들이 새로워 보이고, 슈퍼에 있는 과자 하나도 신기하게 느껴지는 시기이다. 부족한 언어실력으로 괴롭기도 하지만 언어도 조금씩 늘어가고, 같이 어학연수를 하는 친구들을 초대해 레시피를 찾아보며 불고기와 잡채를 대접한다. 용돈이나 아르바이트비를 모아서 인근 도시나 국가로 가난하지만 즐거운 여행을 한다. 8인실 도미토리 호스텔에서 잠을 청하고,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고 밤새 야간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해서 온몸이 뻐근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피곤함은 싹 잊게 된다. 


주말이면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클럽도 가고 외국생활이 심심하지 않다.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어쩜 친절하기도 한지. 어찌나 이 곳의 나무의 하늘은 한국과 다르면서도 이렇게 예쁜지. 짧은 체류기간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기가 되면 슬퍼진다. 이 곳이 제2의 고향 같은데 꼭 떠나야 하는지 의문이 들면서,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한동안 '외국병' 이 치유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20대 초반 호기심과 열정으로 반짝거리던 시절이며, 주변의 모든 것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시기이다. 조금 불편한 점들이 있더라도 짧은 시간 생활하다 돌아가기 때문에 비교적 좋은 것들만 경험한다. 현지인들의 생활 속에 아주 깊숙하게 들어가지는 않기 때문에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다가는 시기이다.


<처음으로 해외 생활을 시작했던 호주에서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즐거운 시간들로 남아있다>





2. 교환학생, 인턴


1번 카테고리와 비슷하지만 책임과 의무가 더 많이 주어지기 때문에 교환학생과 인턴을 따로 분리해두었다. 이미 어학연수와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한 학생들이 그때의 경험을 되살려 교환학생에 도전하기도 한다. 약간의 자금만 마련되면 경험할 수 있는 어학연수/워킹홀리데이와는 달리, 자금과 함께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것이 교환학생과 인턴이다. 교환학생으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토플 점수를 취득해야 하고, 수많은 교내 경쟁자들 중에서 왜 내가 그곳에 선발되어야 하는지 학업계획서와 함께 면접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인턴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한국 회사의 해외지사에서 인턴쉽을 하게 되는데, 교환학생 기간 중 인턴쉽을 구하는 경우도 있고, 한국에서 진행되는 전형을 통해 (대개는 코트라나 무역협회를 통해) 해외의 인턴쉽을 구하기도 한다. 이 경우 영어뿐 아니라 현지 언어를 구사한다면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어학연수나 워킹홀리데이 시절처럼 여행도 많이 다니게 되고, 다양한 외국인 친구들도 사귀게 되며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시절과 다른 점은 책임져야 할 일들이 더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따라가려면 예습 복습도 철저히 해야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취업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학점관리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인턴생활의 월급은 아주 적지만 근무시간은 현지 직장인들과 똑같기 때문에,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해야 한다. 피곤하다고 해서, 직장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무턱대고 그만둘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의 경험들은 기록으로 남아서 이력서에 남기 때문에 어느정도 결과물을 내야 한다.


하지만 20대 초중반의 어린 시절이고, 어려운 순간들이 생기더라도 해외생활이 주는 새로움과 즐거움이 그것들을 일정 부분 상쇄시켜줄 수 있다. 언젠가는 끝이 있는 생활이기에 힘든 순간을 견딜 수 있다.


<처음으로 인턴생활을 했던 곳. 이 시간들이 지나고 나서 독일에서 계속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3. 해외유학


조기유학이나 가족의 이민으로 인한 유학이 아닌, 20대 이후 유학은 그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고등학교 졸업 후 1-2년 정도 파운데이션이나 커뮤니티 칼리지를 거친 후 4년간 해외에서 학사 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혹은 교환학생으로 간 학교로 편입을 해서 학업을 마치는 경우도 있고, 한국에서 다니던 대학을 자퇴한 후 해외에서 대학 1학년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아니면 나처럼 한국에서 학사를 마친 후 해외에서 석사/박사를 하게 되는 경우들도 있다. 20대 초반의 잠시 머물다가는 여행자가 아닌, 그 나라의 학생들과 다른 나라에서 유학 온 학생들과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공부하고 경쟁을 하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그 나라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 이상 거주하게 된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언어의 장벽이다. 영어가 원어민처럼 유창하지 않은 이상, 그리고 한국에서 정규과정으로 영어공부를 했던 학생들은 언어의 장벽을 가장 먼저 마주친다. 글쓰기나 읽기는 그럭저럭 되는데 영어로 하는 프레젠테이션이라도 잡히게 되면 일주일 전부터 긴장상태이다. 프레젠테이션은 준비라도 하면 되지.. 수업시간 불쑥 치고 들어오는 교수님 질문이나, 자기주장이 너무나 확실한 아이들과 하는 조별과제에서는 몇 마디 못하고 돌아오기 일쑤이다. 언어의 장벽만큼이나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하는 일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이렇게 기본이 안되는데 어떻게 공부를 하지.. 하면서 자책하기도 한다.



외국에 투자하는 비용과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 1,2번의 사례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가정형편이 아주 넉넉해서 그 정도의 비용은 아무렇지 않게 지불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유학생들은 생활비를 아끼려고 노력한다. 반면 이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햇는데 아무런 결과가 없을까봐 불안해한다. 졸업 후 현지에서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한국으로 쫓겨가듯이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4. 해외취업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묻는 부분이기도 하고, 요즘들어 한국에서도 관심이 많이 분야이기도 하다. 나는 독일에서 석사 공부를 하면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논문을 쓰다가 현재 다니고 있는 기업에서 최종 오퍼를 받아 취업하게 되었다. 현지에서 학생 신분으로 있으면 기회가 더 많이 찾아온다. 나처럼 해외에서 공부를 한 후 취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한국에서 지원해서 해외 현지 기업에 취직하는 경우들도 있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기술이 있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아무래도 해외에서 취업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해외유학도 쉽지 않지만 어쨌든 유학생은 그 나라에 비용을 지불하고 대학에서 교육이라는 서비스를 제공받는 소비자의 입장이다. 하지만 취업을 하게 되는 순간 회사에 노동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게 되는 입장으로 바뀌게 된다. 돈을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시간과 노동을 회사에 제공해야 한다. 처음 현지 기업에 취직했을 때, 사실은 '외국병'에 걸렸던 20대 초반의 나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것도 사실이다. 외국에서 그것도 글로벌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어떨까 하고 항상 궁금해 했었고, 성공한 직장여성이 된 것 마냥 신났었다. 알게 모르게 주변 지인들에게 은근슬쩍 자랑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해외취업은 정말 실전이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이곳의 세율은 한국의 두 배 이상이기 때문에 왠지 손해를 보는 느낌이다. 꼬박꼬박 나가는 월세와 관리비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나와 비슷한 동료들 사이에서 돋보여야 하는데, 언어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 언어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내 실력이 디스카운트되는 일들이 발생한다. 


언어는 둘째치고 그 미묘한 문화 차이를 따라갈 수 없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10대 미국 소녀가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알 수는 있어도, 우리가 어린 시절 즐겨보던 만화영화에 대한 추억담을 한국인들과 교감할 수는 없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동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가끔 나만 모르는 이야기들이 나올 때가 있고 전혀 공감을 못할 때도 있다.


취업을 카테고리로 브런치를 열었고 이 부분은 앞으로도 주요 소재로 쓰일 예정이기 때문에 이쯤에서 줄이도록 한다.


<현재 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 가을이면 이런 경치를 사무실 안에서도 볼 수 있다>






5. 해외 이민


외국인 남편/부인을 만나 그 국가로 이민을 가거나, 유학부터 시작해서 취업한 후 계속 그 나라에 살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이민에도 다양한 사계가 있는데 자녀들이 있는 경우, 현지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분들, 현지에서 공부를 하는 경우 등등 다양한 사례별로 생활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딱 잘라 일반화할 수는 없다. 다만 이민은 정말 한국을 영영 떠난 경우이기에, 해외생활의 최종 마침표쯤 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을 떠나 타국에서 (미국에서) 살고 있는 연예인/공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방인'이라는 프로를 보면서 많은 공감을 하고 있다. 물론 그들은 경제적인 면에서 넉넉한 편이라, 이민을 간 다른 이방인들의 행보와 같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경제적 결핍은 이방인의 삶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프로를 통해 돈이 많든 적든 간에 타향살이가 주는 외로움과 허전함은 해외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비슷한 것 같다고 느꼈다.


처음 뉴욕으로 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음식 하는 낙으로 살았더니 엄청나게 살이 쪘고, 위험할 것 같아서 값비싼 가방 대신 비닐봉지에 물건을 넣고 다녔다거나 현지인들과 대화하기 힘들어서 그 자리를 은근슬쩍 피해왔다는 배우 서민정의 이야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본인이 선택한 삶이고 물론 어려운 점만큼이나 즐거운 시간들도 많을 것임을 알지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국에서보다 몸과 마음에 몇 배는 더 긴장하는 상태로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한국으로 돌아가 엄마가 해주는 저녁밥을 먹고 누워만 있어도 온몸의 긴장이 다 풀리는 느낌이 든다. 지치고 팍팍한 한국의 삶이지만 내 나라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는 경험을 수차례 해 보았다.


해외이민의 가장 힘든 점은 "나도 이 곳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는데, 생김새가 다르고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외국인/ 여행객으로 대우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나라에 정착해서 살아가기는 하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영원한 외국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정착해서 살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영원히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은 끊임없이 하게 되는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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