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도 너야

계절이 100회 차가 끝나도, 또다시 너

by 빛나

세린 : 비 오는 여름밤, 우리 집 불빛이 골목 끝까지 번져 샹들리에 빛이 머그컵 위에 고요히 내려앉았어.


서진 : 오늘도 네 컵, 라운 컵, 미라 컵, 그리고 내 컵. 네 개 그대로네.


세린 : 그 네 개 안에 우리가 함께한 계절들이 숨 쉬고 있었어. 웃음도 있었고, 벌어지는 틈도 있었어.


서진 : 틈이라… 네가 느낀 건 언제부터였을까.


세린 : 열여섯 여름, 네가 넘기던 종이 소리가 내 첫사랑이었어. 그 소리 뒤에 오는 침묵이 자꾸 내 마음을 얼게 했어.


서진 : 사업할 땐 단단했지만, 네 앞에선 그 단단함이 갑옷처럼 굳었나 봐.


라운 : 오늘 서진이랑 미라, 꽤 잘 맞던데. 썸 타냐?


미라 : 그러게. 우리 사귈까?


세린 : 웃었는데, 숨이 한 박자 늦게 떨어졌어. 어쩌면 이런 순간이 시작이었는지도 몰라.


세린 : … 너, 나 좋아해? 아니면 그냥 두는 거야?


서진 : 이미 알고 있는 줄 알았어.


세린 : 그 짧은 숨이 내 안에서 오래 울렸어.


라운 : 요즘 너 웃는 게 예전 같지 않아.


세린 : 웃고 있는데?


라운 : 그건 얼굴이고, 웃음은 아니잖아.


서진 : 출장 끝나면 얘기하자.


세린 : 그 약속, 장마보다 길게 비워졌어.


라운 : 난 무조건 너야.


세린 : 장난치지 마.


라운 : 내 옆에선 네가 확인하지 않아도 돼.


세린 : 이유 없이 눈물이 났어.


서진 : 세린이한테 무슨 일 있어?


미라 : 너 이렇게 긴장하는 건 처음이네.


서진 : 불안해. 청혼부터 해야 하나.


미라 : 그 표정… 못 꺼내겠다.


세린 : 청첩장까지 다 끝냈는데, 가슴 한쪽이 비어 있어.


라운 : 우리 얘기도 그때 하자. 우린 가족이니까.


서진 : 뭐야? 둘이 언제부터?


세린 : 네가 바쁘다 해서 얘기 못 했어.


서진 : 난 끝낼 생각 없었는데.


세린 : 내 선택은 라운이었어.


서진 : 기회는… 없는 거야?


세린 : 응.


서진 : 그럼 나한텐, 남은 게 없네.


세린 : 널 버리려던 건 아니야. 나도 채워지고 싶었어.


서진 : 우리 시간, 지우지 마.


세린 : 안 지워.


서진 : 원래 네 손에 끼워주려고 샀어. 자리 잃은 건, 나인지 이 반지인지 모르겠다.


세린 : 상자 하나에 계절이 묶였네.


서진 : 다섯 해 만인데, 인사도 없이 가?


심장 : 아빠, 별나라에 있어요.


서진 : 얼굴빛이 안 좋아. 괜찮아?


세린 : 괜찮아… 그냥 바빠서.


서진 : 쓰러질 것 같아. 부축할게.


의사 : 심한 탈수와 저혈압이에요.


심장 : 엄마 맨날 라면만 먹어요.


서진 : 우리 집 가자.


심장 : 치킨 먹고 싶어요.


세린 : 기대면… 버거워.


서진 : 기대도 돼. 이번엔 안 놓칠 거야.


심장 : 저 여기서 살면 안 돼요?


세린 : 그만해.


서진 : 그냥 편했으면 좋겠어.


세린 : 라온… 심장 두 살 때. 갑자기였어.


심장 : 아빠.


서진 : 응, 아빠야.


서진 : 오늘은 장 보러 같이 갈래?


세린 : 웃음이 오래간만이라, 네 눈이 못 떠나네.


서진 : 혼인신고 하자.


심장 : 아빠.


서진 : 네가 처음 부른 그 소리, 가슴에 새길게.


미라 : 담생에도 함께하고 싶은 사람, 누구야?


세린 : 이번 생은 서진, 다음 생은 라운.


서진 : 난 질투하라고 다른 사람을 봤어.


세린 : 그땐 네 속을 꺼낼 힘이 없었구나.


세린 : 이번엔 마지막이야.


서진 : 알아. 그래서 안 놓칠 거야.


서진 : 나 하루만 더 살 거야. 다음 생에도 너만.


세린 : 지겹지도 않아?


서진 : 우리가 살아온 날들이 다 꽃이었는데.

에필로그


그 사람의 사랑은 한 번도 화려하지 않다. 긴 세월, 멀어졌다가 돌아오고, 다투고, 잃고, 다시 찾는다.


서툴고 엇갈린 고백 끝에, 우리는 함께 늙어간다. 내 나이 백 살, 숨이 잦아드는 그날, 그는 약속을 지킨다.


하루만 더 살아 나를 보내고, 이튿날 나를 따라온다.


인생 한 번, 사랑하는 사람과 한 번, 사랑받는 사람의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진다.

작가의 말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문득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이, 일생 동안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특별하지 않은 한 여자가, 평생을 두 남자의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그 사랑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만들어내는 온도 차이를 , 나는 소설로 그리고 에세이로도 담아보고 싶었다.


머릿속을 오래 떠돌던 장면과 감정들을, 마침내 글로 풀어내 본다.


https://m.blog.naver.com/bina800726


풀버전은 네이버 웹소설 챌린지 리그에서 만나보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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