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데우스] 질투는 나의 힘

by 로베

소개

우리가 흔히 아는 음악가 모차르트를 다룬 영화이다. 제목인 '아마데우스'를 봐도 알 수 있다. 그의 풀네임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이기 때문이다.

(아마데우스는 '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 뜻도 있는데, 영화 속 살리에리가 그를 질투하면서 신과 그를 엮기도 한다)


제목과 다르게 모차르트보다 살리에리의 비중이 더 많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살리에리는 살리에리 증후군의 그 살리에리가 맞다.

※살리에리 증후군: 1인자를 질투·시기하는 2인자의 심리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노년의 살리에리가 자살을 시도하면서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본인이 살리에리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그는 병원에 방문한 신부와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과 모차르트의 과거를 들려주는데, 그렇게 영화는 전개가 된다.


살리에리는 상인 집안의 아들이었고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지 않아 음악을 배울 수 없었다. 어린 그는 기도했다. 음악을 하게 해달라고. 그 후 아버지는 식사 중 돌아가셨고, 음악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신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도 독실히 기도하였다. 또 음악에 재능이 있고 꾸준히 배워서 궁정악장까지 오르는 음악가로서 최고의 명예와 부를 이루게 되었다. 또한 그는 음악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며 후배 양성에도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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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모차르트라는 신동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6살에 눈을 가리고 황제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는 아이. 그는 모차르트가 궁금해 몇 년 뒤에 빈에 오게 된 그 천재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게 웬걸. 그는 가볍기 그지없고 여자를 좋아하는 사내였다. 성격도 괴팍했다.


여차저차하여 황제는 모차르트를 궁으로 들여보냈고 오페라까지 맡긴다. 천재 괴짜를 반길 사람은 없었다. 궁에서 음악적으로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그를 대놓고 싫어했다. 살리에리는 옹호하는 척하면서 그에게 질투를 표현했다. 황제가 금지한 것을 모차르트가 지휘하는 공연에 올리게 하는 방법 등으로 말이다. 살리에리는 그의 천재성을 계속 부러워했다. 신을 원망하며 기도했다.


그렇다면 모차르트는 잘 살았을까? 아니다. 그는 버는 돈에 비해서 씀씀이가 컸고, 대중들이 원하지 않아서인지 공연을 많이 하지 못했다. 자존심이 강해서 교육을 하지도 않았다.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에 아내와 갈등도 있었다. 또한 술과 약에 찌들어 살았고 밤에 나가서 파티를 즐기며 살았다.


살리에리는 이런 모차르트를 제3자를 통해 감시했다. 돈이 없는 모차르트집에 자신을 익명으로 하여 하녀를 보낸다. 또한, 가면을 쓰고 찾아가 진혼곡을 요청하며 돈을 주기도 했다. 모차르트는 이 노래를 만들면서 쇠약해졌다. 물론 여러 상황이 겹쳐 미쳐간 것도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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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는 국립극장이 아닌 사설극장에서 오페라 연주를 하다가 쓰러진다. 몰래 관람을 하고 있던 살리에리는 마차를 이용해 그를 그의 집으로 데려다줬다. 그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지쳐 아이를 데리고 나갔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에게 고마워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모차르트는 진혼곡을 요청한 남자인 줄 알고, 나중에 오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살리에리에게 말했다. 살리에리가 문을 열었을 때, 모차르트가 쓰러졌을 때 함께 공연한 동료들이 있었다. 안부를 묻고 연주료를 줬다. 모차르트는 이것을 알리 없었는데, 살리에리는 진혼곡을 요청한 남자가 왔다고 거짓말한다. 다음날까지 곡을 완성하면 돈을 더 준다고 했다며 공갈을 한다. 모차르트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데, 살리에리가 도와준다고 한다. 밤새 모차르트는 음계를 말하고, 살리에리는 받아 적는다. 동시에 살리에리는 그의 천재성을 느낀다. 지친 둘은 잠들었고 모차르트의 아내와 아들이 찾아온다. 아내와 인사한 모차르트는 좀 있다 숨을 거둔다. 장례를 치른다. 전염병이 창궐했던 시기였기에 여러 시체랑 섞이며 어디에 묻힌 지도 알 수 없게 된다.


마지막에 늙은 살리에리가 신부에게 이야기를 마친다. 그리고 요양보호자를 통해 화장실로 가는 복도에서 크게 소리치며 영화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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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리 증후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2인자가 1인자에게 느끼는 질투가 왜 살리에리 증후군인지 알 수 있다. 광적인 질투는 아니었지만,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에게 계속 훼방을 놓는다. 그리고 혼자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질투한다.


실제 관계

실제로도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에게 질투를 느꼈을까? 반은 맞고 반은 아니라 할 수 있다. 그의 천재성을 부러워한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처럼 질투를 느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지만 살리에리는 궁정악장이었고, 그 위치는 음악가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위치였다. 명예와 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 유럽에서는 살리에리의 유명도가 모차르트보다 높았다. 또한, 살리에리는 덕망이 높아 여러 사람과 어울렸으며, 후배양성에 힘썼는데 돈이 없는 사람을 위해서 무료로 교육을 해주기도 했다. 제자로는 베토벤, 슈베르트가 있었다. 모차르트의 아들도 그에게 음악을 배웠다. 실직 및 사망한 음악가 유족을 위해서 상조회까지 만들었다. 명예, 부, 인간관계 등에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질투할 이유가 없었다.


반면 모차르트는 어땠을까? 오히려 모차르트가 살리에리를 질투했다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른다. 그는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쓰기도 했다. '살리에리가 모든 공연을 가져가서 제가 돈을 벌기가 힘이 듭니다' 또한 '황제는 살리에리와 저를 차별합니다' 등의 내용이 있었다. 때문에 오히려 모차르트가 질투했다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른다.


돈, 명예, 인성 등 다방면에서 살리에리가 더 나았다고 할 수 있다. 모차르트는 성격이 괴팍한 걸로 유명해서 타인과 잘 지내지도 못했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모차르트가 질투했다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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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가 죽었을 때는 살리에리는 누명(?)을 써야 했다. 향간에서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시샘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 이유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것에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시체는 많이 부어 있어서, 살리에리가 독살했다는 소문까지 이르렀다. 살리에리는 억울했다. 본인과 제자는 모두 아니라고 부인했다. 말년에 치매가 있을 때 본인이 죽였다고 직접 얘기했지만, 치매환자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임종이 왔을 때는 정신이 돌아왔는데, 다시 아니라고 말했다.


이러한 소문에는 여러 작품이 한몫을 더했다. 피터 쉐퍼의 희곡 아마데우스와 지금 소개하고 있는 밀로스 포먼의 동명의 영화가 그러하다.


아무튼 살리에리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질투할 이유도 없고, 오히려 모차르트의 재능을 인정하고 함께 곡도 썼는데 말이다! 살리에리 증후군이라는 단어를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살리에리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 진실을 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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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

영화를 보기에 앞서 광적인 질투를 상상했다. 사전지식도 없었다. 그렇기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며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해할 줄 알았다. 그래서 살리에리는 공격적이고 모차르트는 순수하지만 시기질투를 받는 천재인 줄만 알았다. 영화 초반부에 생각이 바뀌었다. 살리에리는 비교적 신사답게 질투를 했다. 물론, 그가 모차르트에게 훼방을 놓으려 했던 점은 잘못됐다. 모략이었으니까. 그래도 공연관람도 가고 집에 데려다주고 돈도 지불하는 것을 보면 신사다웠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질투는 나쁜 것인가? 양날의 검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질투는 부정적인 것이다. 연인 간 질투, 직업에서의 질투 등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건 집착과 광기가 되어 질투대상과 주변에 피해를 준다. 이러한 질투는 상대에게 해를 입히든 안 입히든 둘 중 하나이지만, 분명한 건 자신을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기형도 시인의 시 '질투는 나의 힘' 마지막도 이렇지 않은가?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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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긍정적인 면은? 나는 예전 독서모임에서 불안에 대해서 토론을 나누었다. 불안은 나쁜 것인가? 이것도 반반이다. 불안으로 인해 성장하거나 도태되거나 머물거나, 대게 셋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질투도 그렇다(질투는 불안을 동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질투를 느끼는지 객관화한다면 나의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상대로 하여금 나의 부족함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나만의 장점을 더한다면 더 인정받을지 모른다.


이렇게 불안이든 질투든 잘 사용하면 긍정적이다.


애초에 질투를 안 들게 할 수는 없을까?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무뎌질 수는 있지만, 제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불안도, 질투도 모두 생존본능이기 때문이다. 불안이 있어야 대비를 하고, 질투를 통해 모략하여 상대를 짓밟아 올라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성이 존재하는 인간이다. 나아가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 필요가 있기에, 스스로 순화시켜 표출해야 한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살리에리에게 이입을 해서 영화를 봤다. 나는 특출 나게 잘하는 게 하나 없다. 자타공인이다. 글쓰기, 독서, 운동, 풋살 등을 거의 매일 하지만, 겨우 평균이다. 유일하게 갖은 거라고는 끈기라서 가끔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하지만, 시간이 많이 들어 힘들고 억울할 때가 있다. 나는 몇 주를 연습하는데, 친구들은 며칠 만에 실력이 느는 걸 보면 좌절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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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질투를 느낀 적은 없다. 그저 타고난 게 없으면 노력을 더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질투가 느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봤다. 낯선 감정이 들겠지만,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질투의 대상과 나를 비교해서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분을 연습해 실력을 키울 거다. 그렇다면 나는 나만의 장점과 그의 장점을 가질 수 있다.


영화를 통해 배운 건, 더 노력하자는 것이며, 질투가 느껴질 때면 배움의 시기라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끝으로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대사로 글을 마무리 짓겠다. 영화 마지막, 노년의 살리에리의 대사다. 1인자를 질투한 2인자가 할 수 있는 적합한 대사라고 생각 든다.

"나는 보통 사람들의 대변자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대변자지. 난 그 평범한 사람들 중 챔피언이요! 그들의 후원자이기도 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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