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사장님은 해마다 한 번, 우리 골목을 지난다.
햇살을 머금은 옥수수 한 아름을 들고
서울의 어디엔가 곡식을 붓듯 온기를 흩뿌린다.
내가 그분을 다섯 번 만났으니,
나는 다섯 개의 연도를 건넜다.
냉장고 필터를 고치는 기사님도 있다.
여섯 달마다 내 시간을 조용히 검침한다.
그가 올 때마다 어김없이 반년이 흘렀다는 뜻.
이름도, 일상도 잘 모르는 사람들인데
그들을 볼 때마다
내 시간은 바람처럼, 저편으로 스며든다.
언젠가 그들을 스무 번, 혹은 서른 번 더 마주한다면
내 삶의 끝에 그들이 도달하는 셈일까.
익명의 방문자들은 내 인생의 표식을 새긴다.
나는 그들에게도 시간의 사형집행자일까
혹은 누군가의 마음속, 오랜 기억으로 머문 이름일까.
문득, 그렇게 되묻는 지금
나는 누구에게 어떤 흔적으로 남는가.
진동하는 현실의 조용한 골목에서
무심하게 지나온 시간을 붙들고, 잠시 멈춰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