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탈피의 여정 1

by 코치 나결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은 '지금'을 살고 있는 그 사람을 대변한다. 다소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때로 그를 이해하는 게 혼란스럽게 느껴지더라도 그 사람은 지금의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잘 들으려는 기울임 속에 이해의 실마리가 보인다. 잘 듣다 보면 그 사람을 느끼게 되고 잘 느끼다 보면 그 사람이 말하는 맥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김없이 한 존재와 만난다.


고객과 코칭을 앞둔 어느 날 아침, 문득 내면에서 흐르던 생각을 끄적였다. 우연한 이 메모 덕에 사람과 세계를 보는 내 안목이 한층 더 겸허해진 걸 느낀다. 존재 자체로 온전하지만, 그 온전함을 마음먹은 대로 발현하지는 못하기에 삶이란 '온전한' 존재로 회복해 가는 여정이란 생각이다. 그런 맥락에서 달라진 나를 보니 그 여정을 잘 밟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남편과 신혼살림을 차렸던 철없던 시절이 떠오른다. 남편과 나는 귀농歸農하고 싶은 공통 관심사로 마음이 통한 지 2년이 채 못되어 한 공간에 서로의 짐을 풀었다. 춘향의 고을 전라도 남원이 우리의 신혼 터가 되어 주었다. 여전히 성장 중이었던 두 인격체가 만나 콩닥거리고 툭탁거리며 살아온 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다. 고작 2년 간의 만남을 발판 삼아 평생을 함께 한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다. 그래서 비장했지만 한적하고 소박한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시작한 덕에 우리의 신혼 살이도 여유로웠다.



주말이면 우리는 남원 실상사에서 운영하는 농장을 방문했다. 귀농인들이 농사와 공동체를 체험할 수 있는 귀한 공간인 실상사 농장에서 상주하는 분들과 함께 일하고 담소를 나누면서 귀농살이에 관한 살아있는 정보를 얻었다. 지금 떠오르는 몇 장면들이 있다. 단오 즈음 감나무 잎을 따서 일일이 썰어 말려 감잎차를 만들고, 감잎을 잔뜩 솥에 물과 함께 넣어 진하게 달여 마시기도 했다. 감잎에 비타민 C가 많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또 어떤 날엔 번개 산행이 잡히기도 했는데 각자 도시락을 챙겨 산속에 들었다. 빨갛고 작은 열매 오미자 채취를 위해서였다. 오미자 열매를 설탕에 버무려 효소를 담거나 잘 말려서 물에 우려 내면 그 색이 곱고 투명해서 한 여름 없던 입맛도 돋우는 차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지리산을 배경으로 사람들 속에서 귀농살이를 서서히 맛봤다. 그렇게 세월을 낚았다.


한 번은 실상사 도법스님이 농장에 방문하셨을 때 어쩌다 스님 앞에서 노래 몇 소절을 불렀다. 그즈음 남원시립국악원에서 막 배우기 시작한 단가 '운담풍경'을 불렀는데 한가로운 풍경을 누리는 어느 한량의 모습을 그리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지나고 보니 우리의 신혼살이도 일없고 한가한 한량의 삶과 닮았던 거 같다. 대도시를 떠났기에 누릴 수 있는 여유였지 싶다.




그즈음 한 마을에 5 가구가 공동체를 이뤄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우리는 바로 그들을 찾아갔다. 남원 산동면에 있는 아담한 마을이었다. 작지만 마을 옆으로 흐르는 계곡엔 물이 철철 흐르고 있었고 해가 잘 드는 그야말로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살고 싶은 마을이었다.(명창 안숙선 님이 살았던 마을이라 전해 들었다) 우리는 이곳에 정착한 분들과 얼굴을 튼 뒤부터 주말이면 무조건 그곳으로 향했다. 많은 귀농 선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그들의 '귀농스토리'를 들으며 우리의 것도 설계해 나갔다. 교사, 시인, 전직 목사 그리고 우리 인연인 택견 사부, 가끔 찾아오는 다른 지역 게스트까지 다수가 모여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속내와 겉내'가 뒤섞인 말들을 쏟아 놓으며 어울렸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과 함께 세계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김목사 님이 합류했다. 만나기도 전에 자주 회자되던 인물이라 궁금했는데 그이는 자신을 스스로 '무위목사'라 칭했다. 그 의미는 목회활동을 하지 않는 백수란다.^^

우리는 목사님 방에서 차담을 즐기며 히말라야 산행에 관한 무용담 듣기를 즐겼었는데 어느 날 내가 책장을 훑다가 뽑아 든 <있는 그대로>에서 눈 맑고 평안해 보이는 한 사람을 만났다. 인도 성자 마하리쉬라 했다. 김목사 님은 존재자체도 몰랐던 마하리쉬에 이어 담배가게 성자 마하라지에 관해서도 신이 나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미처 몰랐던 세계에 발을 내디딘 느낌이랄까. 신선했다. 이걸 계기로 명상에 관한 목사님의 무수한 서사를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며 밤이 깊었었다.


결국 몇 달 뒤 남편과 나는 눈 맑은 성자 마하리쉬의 아쉬람이 있는 인도 남부 첸나이로 향했다.


라마나 마하리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