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망

탈피의 여정 2

by 코치 나결



월드컵 열기가 한창 뜨거웠던 2002년, 나와 남편은 명상 책 <있는 그대로>에서 만난 눈 맑은 성자 마하리쉬 아쉬람에 찾아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떠오르는 아쉬람 명상 홀에 감돌던 분위기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고요 속의 고요’다. 나는 이내 그곳 분위기에 스며들어 느린 걸음으로 공간이 제공하는 여백과 호기심 사이를 오가며 걸었다. 뜰 밖에서는 내 느린 걸음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코발트 빛깔의 화려한 공작새 몇 마리가 가끔씩 ‘꽥’하는 소리를 내며 어슬렁거렸다. 소리와 함께 문 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홀 안으로 돌리니 다양한 피부색을 한 사람들이 나처럼 저마다의 고요 속에서 공간을 누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성자는 이미 세상에 없는데 나와 저들은 어떤 끌림과 이유로 이 먼 땅에 찾아든 걸까?



저들의 것은 알 수 없으나 나만의 이유를 찾은 지는 꽤 오래다. 내 이유를 말하자면 한 마디로 스승에 대한 로망이었다. 한 때 나는 인도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의 <42 장경>을 읽다가 스승에 관한 문장 앞에서 오래도록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스승이란 모든 걸 내맡길 수 있는 자’라는 정의였다. ‘내맡김’이란 언어가 주는 신선함이 좋았고, 나도 이런 스승이 있었으면 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내 삐딱해졌다.



‘내맡김? 좋다 이거야, 근데 도대체 모든 걸 내맡긴다는 게 어떤 경지인 거야? 그런 게 가능하기나 한 거야?'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나고 낯도 살짝 뜨겁다. 치기 어린 혼잣말에는 열등감도 보인다. 마치 이런 내 열등을 누구에게 들킬까 봐 일단 치고 보는 격투기 선수 같기도 하다. 그땐 그랬다. 지금은 그 말 너머 욕구가 빤히 보이는데 그땐 몰랐다. 그런 ‘내맡김의 경지’가 실재한다면, 또 스스로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충분히 도전하고픈 의지가 충만한 열정이 보인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걸어가고 싶은 방향은 알겠는데 마땅한 길을 찾지 못해 방향마저도 흐려지는 상태였던 거라는 것을, 그런 길이 있기나 할까 하는 기대 반 포기 반의 심정에서 삐딱하게 치고 빠졌던 거라는 것을. 그렇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 열정의 동아줄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맞다. 나는 스승이 필요했다. ‘내맡김의 경지’를 실현 가능하도록 이끌어줄 수 있는 스승 말이다. 그러니까 '내맡김’의 경지를 체득하고 싶은 열망을 품게 된 내게 스승은 꼭 필요한 존재였던 거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스승이라 존경받으며 한 시절을 살았던 성자의 자취라도 느끼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인도로 향했던 거였다. 막 아기를 잉태한 때였음에도 인도행을 강행했던 건 스승에 대한 간절함이 무의식적으로 표출되었던 걸지도 모를 일이다.





2003년 3월 나와 남편은 건강하고 영롱한 딸을 낳았고 원했던 귀농살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단출한 산속 통나무 집이 꽤 마음에 들었다. 전남 보성 땅에 우리를 초대한 부부와 공동으로 일을 막 꽤 하려던 즈음 공교롭게도 우리는 각자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남편은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음식 먹으면서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인 건가?’ 하는 자문으로 새로운 삶을 열망하기 시작했고, 나는 ‘내 마음인데 왜 항상 걸림 없이 마음대로 쓰지 못하지’ 하며 보다 지혜로운 삶을 갈망했다. 새로운 생명을 맞이한 기쁨과 새 터전에서 자리 잡아가는 분주함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스승에 대한 열망이 다시 일깨워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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