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탈피의 여정3

by 코치 나결



2003년 새봄을 알리는 그윽한 기운이 감도는 3월 나는 건강하고 영롱한 딸아이를 순산했고 곧바로 친정에서 몸을 풀었다. '산후조리는 적어도 두 달은 해야 한다’는 것과 ‘산모는 적어도 두 달 동안 찬물에 손을 대지 않아야 한다’는 주워 들은 말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게 가능했던 건 내 삶의 배경인 세 사람 덕분이었다. 나는 열 달 동안 생명을 품으랴 출산하랴 다소 무겁고 긴장되었던 몸과 마음을 엄마와 언니 곁에서 그야말로 ‘확’ 풀어젖혔다. 정말이지 나는 두 달 동안 찬 물에 손 댈 필요가 없었던 운 좋은 인간이었던 것이었다.



생명을 잉태해서 출산을 한다는 건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마음으로 놓고 보면 가족 모두의 경험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첫’ 생명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첫 손주, 첫 조카, 첫 아이!!!

그런데 나는 더 이상 낳지 않았고 언니는 출가해 스님이 되었기에 우리 모두의 처음은 곧 전부가 되어버렸다. 말하고 나니 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내 몸을 빌려 모두에게 영롱한 생명과 조우할 수 있게 했다는 자부심도 생긴다. 손에 찬 물 한 방울도 대지 않도록 해줄만한 존재였지 싶다. 후훗^^






언니에게 전해들은 바 산고를 마구 호소하던 나를 지켜보던 엄마는 다리를 휘청거리며 분만실을 나가서 그만 바닥에 주저 앉으셨단다. 이 장면은 내겐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내게 엄마는 억척스럽고 무뚝뚝하기만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 보니 그토록 강했던 엄마는 또 그토록 여리기도 했던 거다. '틀에 박힌' 사람이 아닌 다양한 면모를 지닌 한 존재였다는 걸 그 땐 몰랐다.


갓 난 아기를 목욕시키던 엄마의 손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툭 불거진 손가락 마디마디와 주름진 손등에 드문드문 박힌 검버섯, 그 거칠고 뚝뚝한 ‘늙은 손’은 조금만 건드려도 이내 부서질 것만 같은 여린 생명체를 ‘능숙하게’ 씻기고 닦이고 입혔다. 그 모습과 그 분위기가 눈앞에 펼쳐진 듯 생생하다. 오로지 새로운 생명체에만 꽂혀 있었던 ‘서투른’ 딸은 ‘능숙한’ 엄마의 마음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 그 시절 나는 엄마의 내면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마음의 능력도 여유도 없었다. 오히려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으로 엄마 마음을 아프게도 했던 수준이었으니 말해 뭐하나. 그런데 아마 지금의 나라면 첫 손주를 만난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과 함께 엄마의 마음에 충분히 머물러 공감하며 앞으로 펼쳐질 엄마의 삶을 응원했을 거다. 허나 그때 나는 그저 엄마가 두 달 내내 끓여낸 새알심 그득한 뜨끈한 미역국에만 감사를 표했던 거 같다. 철없던 내가 이제 철이 담뿍 들었건만 엄마는 지금 내 곁에 없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나보다. '지금 깨달은 걸 그 때 알았더라면'...엄마는 내가 산후에 편안하게 몸을 풀 수 있는 친정 그 이상이었음을 실감한다. 이렇듯 깨달음의 배경도 되어 주셨던 거다. 엄마가 내게 남긴 찬란한 유산이다. 그 때 엄마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새롭게 느꼈을까? 칠 십이 넘어 얻은 첫 손주를 만난 자신이 어떻게 다르게 보였을까?






약사였던 언니는 ‘울림'(태명)을 만난 기쁨으로 모든 업무를 내려놓고 두 달 동안 동생의 산후 조리에 올인했다. 천기저귀를 쓰겠다는 동생 내외의 생각이 언니에겐 어떻게 들렸을까? 일회용 기저귀라면 마음껏 사다 줄 수 있었던 사람인데 말이다. 언니에게도 ‘처음이자 전부’였던 조카 울림에 대한 사랑은 매일 천기저귀를 탁탁 털며 건조대에 너는 모습으로 드러났다. 똥 기저귀는 일일이 손으로 헹궈 애벌빨래를 마쳐 다른 기저귀들과 합쳐 폭폭 삶아 세탁기에 돌려 너는 과정이 말이 쉽지 두 달 동안 무던하게 반복했던 언니 모습을 떠올리니 웃프다^^.


또 언니는 우리가 머무는 두 달 동안 동네 백화점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온갖 종류의 아기 용품을 사 날랐다. 처음에는 모빌과 곰인형을 사더니 보석같이 고운 아기 옷을 종류별로 선보였다. 작은 딸랑 방울을 비롯해 아기 용품의 종류가 참 다양하다는 걸 그 때 알았다. 덕분에 동생 내외의 돈은 한동안 굳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영롱한 아기는 스물 셋 청년이 되었고 언니는 산후 조리 공덕을 나름 누리고 있어 보인다.청년 조카는 이모와 자주 통화하며 일상을 나누고 종종 선물도 보내준다. 이 둘의 관계만 봐도 모름지기 사람은 멀리 내다보는 안목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잘 견뎌내면 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헤헷.




작가의 이전글열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