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피의 여정 4
이제 출산에 관한 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금의 친정인 내 남편에 관한 것으로 이어진다. 분만을 앞두고 간헐적 산통을 겪는 내내 곁에서 허리를 쓸어주며 함께했던 남편은 열 달 동안 태 안의 생명체 ‘울림’과 교감했다. 내 배 위에 손바닥을 대고 ‘울림아~~’하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느새 아기도 손을 대는 게 느껴진다며 신기해하던 사람이었다.
마침내 세상에 출현한 ‘울림’과 마주했던 남편 표정이 지금도 내 입가에 미소를 돋운다. 예정된 상황이었지만 갑자기 자기 눈앞에 '뚝' 떨어진 숨 쉬는 생명체를 보면서 또 다른 자신을 마주하는 듯한 모습이었달까. 아무튼 숭고해 보였던 걸로 기억한다. 며칠 뒤 남편은 그 경이롭고 숭고한 만남을 뒤로하고 아기와 머물 새 공간을 꾸미러 전남 보성 땅으로 향했다. 남편은 그토록 경이롭고 애틋한 만남을 뒤로하고 어떻게 발 길을 돌릴 수 있었을까? 두 달 뒤 나와 울림이 머물 공간을 보다 편안하고 쾌적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떠났던 기억이 몽실몽실 떠오른다.
남편은 뒷마당에 커다란 고무통을 갖다 놓고 산후풍에 좋다는 다양한 약초를 우려낸 더운물에 몸을 담그게 했고 어혈 푸는데 좋다는 생강나무 달인 물을 마시게도 했다. 산속 통나무 집에서 우리의 '울림'은 아침 새들에게 옹알이로 화답하며 무럭무럭 자라 백일을 지냈고 그 사이 내 산후조리 여정도 점차 마무리되어 갔다.
출산은 내 삶에 큰 변혁을 일으켰다. 말하자면 나를 둘러쌌던 또 하나의 허물을 벗는 계기가 되었다. 한 마디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으로부터의 '탈피'가 시작된 거다. 온전한 돌봄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생명체의 등장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필요로 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24시간 내내 오로지 아기에게 쏠려 있었던 내게는 먹는 행위조차도 오로지 양질의 젖을 만들기 위함이었으니 하는 말이다. 엄마라면 누구나 하는 경험에 왜 이리 호들갑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내게 출산은 수행의 시작이었기에 떠는 호들갑이다.
내게 '수행'이란, 맑고 투명한 거울이 있다 치면 그 거울을 덮고 있는 먼지를 닦아내는 과정이다. 나는 출산과 돌봄을 시작으로 내 존재를 덕지덕지 감싸고 있는 실체 없는 허물을 벗어 버릴 수 있는 수행의 기회로 바라보게 되었다. '내 마음인데 왜 매 순간 내 마음대로 쓰지는 못하는 거지' 했던 내면의 소리에 비로소 스스로 조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