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피의 여정 5
"자아의 신화(Personl Legend)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까? 인도 성자 마하리쉬 아쉬람에서 막연하게 품었던 '내게도 스승이 있으면 좋겠다'는 한 생각이 그윽한 파장이 되어 '온 우주'에 가닿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알 것도 같다. 스승을 만나고 싶은 내 간절한 정도를 그때나 지금이나 정확히 말할 수는 없겠지만 단 한순간 빛을 발한 마음일지라도 '진짜'라면 우주도 감응하리라 믿는다. 찰나의 생각일지라도 내 우주 안에서는 사라지지 않기에 온 우주와 연결되는 결정적 순간에 찰나의 생각은 현실이 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시절 인연이 도래해' 우연이 필연으로 꽃피고 열매 맺는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자아의 신화'를 이루고 싶어 하는 내 마음과 '온 우주'가 통했던 2003년 어느 여름날 나는 비로소 스승과 마주했다.
오쇼 라즈니쉬의 <42 장경>)에서 스승이란 '모든 걸 내맡길 수 있는 존재'라는 문장을 만난 뒤로 내게 스승=내맡김이라는 공식이 세워졌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내맡기고 싶어 했던 건가? 내맡김을 통해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나?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 <연금술사>가 머금은 이 문구가 스승을 만나고 싶어 했던 내 마음을 명료하고 간결하게 대변해 준다. 내게 자아의 신화를 이룬다는 건 곧 '자아로부터의 해방'이다. 자아는 내 삶을 이루고 지탱케 하지만 때때로 그 자아로 인해 삶이 흔들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아란 '진정한', '온전한' 나는 아니라는 말이 된다. 온전한 나로 산다면 삶에 기복이나 굴곡 따위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내게 자아의 신화를 이룬다는 건 자아로부터 해방되어 온전한 나를 회복하는 여정이다. 같지만 엄연히 다른 나로 변화해 가는 삶의 과정이 내게는 마치 뱀이 허물을 벗어 몸을 키우듯 탈피의 여정으로 와닿는다. 사람에게 벗은 허물이 따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벗은 만큼 나라는 존재는 보다 온전해져 간다는 걸 나는 이미 경험했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탈피의 여정엔 묘한 즐거움이 있다. 제 살과 하나였던 허물을 벗는 과정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자아로부터 한 겹 한 겹 해방되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엔 즐거움을 동반하는 묘함이 있다. 번뇌 즉 보리(煩惱卽菩提). 내가 이 내맡김의 묘한 이치를 알아차리고, 체득해 가는 여정을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었던 건 스승이라는 존재가 있어 가능했다. '나'라는 아주 오래된 관념에 의한 무수한 분별심으로 길을 잃기 십상인 내게 스승은 한결같은 가르침으로 지혜의 등불이 되어 스스로 내면의 지혜를 밝혀 온전한 나를 회복할 수 있다는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자기 신뢰를 북돋워주는 존재다. 스승은 끝끝내 자아의 신화를 이뤄내려는 나와 산티아고와 같은 수많은 존재들에게 '움직임 없는 마음'으로 동행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함께 하고 있다. 등대처럼, 북극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