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에 서다

도시생활

by 용혀기

그렇게 그동안의 세상에서 벗어 나와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은 시작되었지만, 알 수 없는 앞날에 대한 열정의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도 힘든 상태에서 오는 동경과 불안함의 강도는 더해만 갔다.

조그마한 섬이 내가 아는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열정은 도시라는 거대한 괴물과 맞서기에는 너무나 미약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세상 속으로 나간 형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이 섬을 떠나 자취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로 맞이하고 보니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밀려옴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저 착실한 아이로 기억된 나였기에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나를 바르게 이끌어 줄 부모님이나 어른이 없어도 잘 해내리라 스스로 다짐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린 나이에 독립을 하는 것이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중학교밖에 없는 섬에서 교육의 열정을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유학을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우리의 부모님들은 인정을 했던 것 같다.

중학교에서 배움을 포기한 친구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시대적 상황에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지 자식을 유학 보내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는 것은 어린 나이에도 알 수가 있었다.


조그마한 섬이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며 살았던 우리들이 도시라는 거대 문명 속으로 그것도 혼자서 접하게 되고 보니 정체성이 흔들리고, 도시 인간들과의 교류에서 오는 혼란이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던 시절이었다.

자율이라는 것이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아님을 알았어야 했는데 그것의 해석을 잘못한 몇몇 친구들은 벌써 어른들의 길을 가려고 했고 사실이 그랬다.

그렇게 일찌감치 자신의 미래를 어른 흉내를 내면서 살아가는 친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이것이 진정 부모님이 바라는 바는 아닐 것이라는 스스로 기특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유학을 보낸 부모님의 걱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도시의 생활은 내가 부모님의 입장이어도 걱정되는 곳이었다.

반면에 도시라는 새로운 세상은 설렘을 주기에도 충분했지만, 항상 불안과 두려움이 함께한 곳이었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서 미로처럼 얽혀있는 골목을 지나가야 만날 수 있는 도시의 작은 나의 공간은 이런 곳에서도 삶의 모습을 펼쳐야 하는 곳이 도시라는 곳이구나! 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렇게 나도 그 속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된 것이다. 고개 숙여 문을 열면 현관이자, 부엌이자, 거실이자, 창고이자, 마당이 되는 작은 공간과 서너 평 되는 방 한 칸이 전부인 이곳이 내가 새로운 열정을 키워나가야 할 전진기지였다.

자취하는 집하고 학교까지는 거리가 있었다. 걸어서 한 시간 남짓 걸어야 했고 버스를 타더라도 3~4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책가방은 도시락 두 개가 무게를 더해 상당했지만, 그때는 그것이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었다고 인정하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도시라는 곳은 정말로 쓸데없는 부분까지도 알아야 하는 곳이었다.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세상의 자질구레한 소리들이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렸고,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곳이 바로 이곳 도시였다.

유명 가수나 연예인 책받침을 갖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참고서보다는 이성에 관한 잡지를 훔쳐보는 것에 관심이 높았던 시절이었지만 518 민주항쟁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는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시대이기도 했다.

밤마다 시위가 이어졌고 하굣길에는 최루탄 가스를 마시는 경우도 있었으며 YMCA에서 보여주는 518 당시 비디오를 보기 위해 수업을 땡땡이치던 애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중학교 시절 이미 유학을 나가 있던 형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지만 그때는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 치부했지만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이 그때 형한테 들었던 이야기가 원인이었다는 사실에 관심의 정도를 낮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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