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의 조우를 불안하고 두려움으로 시작했지만 이내 적응하게 되었고, 나는 그 속에서 잊고 있었던 열정을 되살리고자 나름대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도심 속에서 물들어 가는 그런 나를 보면서 나도 이 세상 속에서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자신만의 열정을 고집하기보다는 세상이 요구하는 데로 수렴하며 자신을 드러내는데 무모한 용기를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을 보내는 동안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적응과 삶에 대한 고찰의 시간으로 보냈다. 고등학교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다는 것은 지난날에 대한 감성을 불러내기에 충분한 섬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두꺼웠다는 반증일 것이다.
도시와의 만남을 통해 세상이 원래 이렇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나의 정체성은 섬에서 키워왔던 순수함과 도시라는 거대 괴물과의 맞섬에 따른 세파에 휩쓸리고 있었던 과도기적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를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혼란의 시기에도 선생님이 되고픈 열정은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고, 그 걸음을 옮겨 또 다른 세상을 향한 원서가 내 손에 들려있었음을 알았을 때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확실하게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선로에서 이탈하지 않았다는 스스로의 안정감만이 유일한 나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었다.
인생 선로가 오직 한 가지밖에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공동의 사람들이 가고 있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미래에 대한 보증수표는 아직 유효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인생의 선로는 결국 종점에 도달했을 때 평가가 된다. 다만 그 종점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에 공동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옳다고 믿고 있다.
불안감은 있지만 아직까지는 정상적인 괘도를 가고 있다는 자긍심을 안고 사범대학 대학생이 된 나는 삶에 대한 열정을 드높이고자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의지의 다짐을 투영하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어린 시절에 가졌던 순수한 열정이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퇴색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그런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낭만과 인생을 논하는 곳이지 책 속에 있는 활자화된 지식을 습득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선배들의 이야기는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나의 열정을 이기고 말았다. 그동안 배워서 쌓아 놓았던 활자들은 어느새 역사 속의 유물이 되어버렸고, 선배들이 말하는 인생을 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체험하고자 타인의 삶 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회전 교차로에 들어서서 나가는 길을 정하지 못하고 빙빙 돌고만 있었다. 세상은 셀 수 없이 많은 길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먼저 살아간 성현들이 개척해 놓은 길인 줄 알면서도 그 길에 대한 확인 작업이 없었던 탓에 쉽사리 핸들을 꺽지 못하고 깜빡이만 켜고 있었다. 뒤에서 몰아붙이는 강압에 그저 밀려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앞장서서 행사를 주관했고 공부하려는 친구들을 인생을 논하는 장으로 불러들였으며 정의감에 불타는 것도 아니면서 민주 시위대의 맨 앞에서 북을 두드렸던 나의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열정을 핑계로 한 회피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87~88년도 대학가 시위는 독재정권에 맞서서 민주주의를 지켜내자는 슬로건으로 넘쳐났고 이에 관한 논쟁을 펼치는 것이 진정한 대학 생활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없는 살림에도 하숙을 시켜주었던 부모님에 대한 생각보다는 학교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강의가 없는 시간에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방 안 가득 담배 연기를 채웠고, 정문에서 시위하다 도망쳐 온 학우들의 은신처가 되어 주었으며 매달 부쳐오는 생활비는 오는 즉시 사라져 버리는 삶을 살면서도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회상하는 것을 보면 인생이란 참으로 묘한 놈이 분명했다.
강의에 들어가는 것보다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지나가는 후배들에게 인생에 관한 이야기들을 마치 인생을 다 산 것처럼 포장해 내뱉었고 시위할 때나 부르는 노래가 마치 개선 행진곡이라도 되느냐 목소리를 높였던 그 시절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의 앞길도 개척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나불거렸다는 사실이 나를 움츠리게 만들었고 술 한잔 마시고 교수님에게 반박했던 삶의 방향과 열정에 관한 토론들이 무상했음을 느끼는 지금의 모습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물론 가시적인 성공이라도 거둬서 타인이나 후배들의 모범이 되었다면 이런 감정은 들지 않았겠지만 길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지금은 자신을 숨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 같았지만 세상이라는 파도는 모두에게 닥쳐왔고 그 파도를 이겨내야 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서글픔을 느낄 새도 없이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게 되었다.
절제하고 인내해도 이룰 수 없는 나의 열정의 게이지는 세상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고 앞날에 대해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면서도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없는 자신감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그렇게 삶의 전쟁을 위한 무기는 녹슬어만 가고 있었다.
군대를 다녀와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임용고시를 준비한다고 도서관을 들락거렸지만, 그동안의 찌든 때를 벗겨내기란 여간 쉽지가 않았다. 자꾸만 속물이 되어감을 느끼고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과 후회는 내 인생의 앞날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았고 나는 빛나는 대학 졸업장을 안고 세상 속을 기웃거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세상 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방향을 향해 방황하고 고민하면서 노력한다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괴롭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동안은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실망시키지는 않았던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부터가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는 사실과 그동안 얄팍하게 품었던 열정이 얼마나 가소로운 것이었는지 피부로 느끼게 되면서부터 나는 이미 타인의 삶을 살고 있었다.
가시적인 모습이라도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에게 필요한 것은 명함이었고 그렇게 무작정 영업을 해야 하는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면서부터 참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경험이 온몸의 신경세포를 오직 안락의자를 찾는 데만 혈안이 되게 만들었고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을 인생을 배웠다고 말할 수도 있고 시간을 낭비했다고도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으로 보내게 되었다.
영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덤벼들었던 세상의 벽은 권모술수를 부려서 상대방을 무너트릴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이때 조금은 알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위엄이 얼마나 큰 지도 알았으며 그러한 자본을 획득하기 위해 흘려야 하는 땀방울의 의미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여기까지 오면서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선생님이 되기 위한 열정은 온 데 간데 없어지고 오직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데 급급한 동물적인 감각만이 활기를 띠고 있었다.
입사 지원서를 몇 장이나 썼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많이 썼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나는 더욱 소심해졌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피해 숨으려고만 했다. 하지만 아직도 가슴 한편에 남아있는 삶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는 없다는 오기가 발동한 것도 사실이다. 비록 선생님이 되고픈 열정은 아니지만 내 인생에 대한 열정은 지금부터라는 것을 깨우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