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그러니까 30여 년 전의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생생한 기억들이 감회에 젖게 만든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누구나 한 가지씩은 자기가 살아가는 기술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는데 나는 그것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무엇을 잘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이 무작정 뛰어든 사회 속에서 철저하게 버려진 듯한 감정을 감추기 위해 숨을 곳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만나게 된 사람들이 직장이라고 부르는 곳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27년의 세월을 보내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시대적 상황이 평생직장을 최고의 염원으로 삼았던 시절이었기에 월급이라는 안락의자만 있으면 인생에 대한 열망이나 미래에 대한 비전과도 바꿀 용의가 넘쳤던 시절로 기억된다. 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지원하는 서민 금용기관에 입사하기 위해서 대학 졸업장은 오히려 불리한 조건이 되었다.
인간은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과 실제의 모습에서 오는 괴리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알량한 자격지심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 되고 그래서 자신만의 기준에 세상이 들어와야 한다고 착각한다. 성공의 성적표라고 믿었던 졸업장이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내가 너무나 작은 욕망을 찾아왔나 의심도 했지만, 그때는 작더라도 안락의자에 대한 열정만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얼마나 편안한 의자였는지 새삼스레 그때의 내가 대견하기도 하다.
열망에 대한 열정이라고 해서 무조건 높이 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몸소 체험을 하는 순간 나는 직장을 구하게 되었고 나의 선생님이 되고픈 욕망은 그렇게 다음 생으로 넘겨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이미 나의 능력의 한계치를 알았거나 열정의 높이를 조금 낮추는 결정을 한 것 같다.
갈 곳이 많아야 하지만 오라는 데는 없는 영업직에서, 오라는 데도 많고 그래서 갈 때도 많은 오토바이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까지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예금을 받아오는 단순하지만 나름 성격에 맞는 직장생활에 빠져가고 있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듯이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들과의 조화를 위해서는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의 성격은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교활함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우리 인간은 자기 삶의 무대가 되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각자마다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보호자의 안내에 따라 길을 가는 것이고 그들로부터 학습한 것을 도전으로 경험하면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가는 방법이다. 꼭 보호자의 안내가 아니어도 책이나 강연, 온라인 등을 통한 정보매체를 통하여도 배울 수 있고 경험할 수도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바탕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여행이라든가 사회에 대한 봉사 활동이나 개성에 맞는 취미활동을 추가 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세상에서 건강한 관계 형성은 중요하다. 자기 주변 사람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서적 안정을 얻고 그 안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났을 때를 준비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감춰서는 안 된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소통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자기 계발의 과정을 수행하는 이유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자기를 찾는 근본적인 행위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타인의 삶을 자처하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갖추는 것은 세상에 적응하는데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자신을 알고 건강한 관계 형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자신의 삶을 의미와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다. 완벽하게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부족함 속에서 천천히 스며들 수 있도록 자신과 세상과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알아야 할 것은 그 관계 속에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긍정적인 사고를 유지하고 자신의 것만을 위한 관계 형성을 지양해야 한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교집합이 형성되었을 때 관계는 더욱 건강해진다.
내가 날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이유는 서로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서민 금융기관은 예금을 유치하고 대출을 홍보하기 위하여 나를 고용했다. 사업에 바빠서 은행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은행이 자기한테 와주기 때문에 그 대가로 예금을 하고 대출을 이용한다. 나는 그런 관계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지만 나 또한 이것이 나에게 안락의자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인간관계라고 하는 것이 업무적으로만 건강해지지 않음도 안다. 소통과 경청의 업무 외적인 부분도 감싸주어야 한다. 각자마다의 생활상과 그들의 일상에서 오는 감정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그들을 만나야 하는 나는 카멜레온이 되어야 했다.
결혼식이 있는 첫 번째 집에서는 함께 축하해 주고 기뻐해 주어야 하지만 다섯 번째 집은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라서 함께 울어주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 힘들다고 짜증 부려서도 안 된다. 귀찮다고 관계를 끊어 버려도 안 된다.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내기 위하여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가식을 보여야 하는 것을 현인들은 처세라고 명명한다. 그런 처세 덕분에 나의 성격은 소심함에서 활발함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27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속될 줄은 그땐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삶에 대한 열정이 들끓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