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를 ‘고형’이라고 불렀다. 물론 고씨 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옛날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고전적인 호칭에 걸맞게 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과거에서 불쑥 튀어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깡마르고 작은 체구, 가무잡잡하고 주름이 많고 수염이 듬성듬성한 얼굴, 대체로 남루하고 땟국에 절어 보이는 복장 등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는 삼십대 중반을 넘어선 늙은 대학원생이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그를 좋아했는데 그는 우선 술을 잘 마셨고 우스운 얘기를 잘 했으며 그저 평범한 얘기를 할 때도 사람들을 주목하게 만드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후배 중에 좀 건들거리는 친구가 있었다. 그다지 잘 알고 지내는 편도 아니었는데 어느날 불쑥 내게 와서 말했다. 형, 오십만원만 꿔줘요. 오십만원이라니. 그런 돈이 있을 리 없었다. 사연인즉슨 등록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꽃미남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뚜렷한 외모에 큰 키와 큰 덩치, 떡 벌어진 어깨, 거기에 걸맞은 걸걸한 목소리 등, 한눈에 확 띄는, 여자라면 한 번쯤 폭 안기고 싶어 할 만한 호남아였다. 구체적으로 묻지는 않았지만 필경 무언가 사고를 친 것이다. 어쨌든 나로선 불가능한 돈을 꾸어 달라는 것이었으므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걱정이 되었다. 그만한 돈을 꾸어줄 사람이 있을까. 나중에 알아보았더니 다행히 잘 해결이 되었다고 했다.
더 나중에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그 돈을 해결해 준 사람이 바로 고형이었다는 것이다. 결국엔 거의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돈 한푼 없어 보이는 고형에게까지 가서 부탁해 보았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응, 그래? 오십만원? 하면서 선선히 내어주는 것이 아닌가. 더 걸작인 것은, 온 몸을 뒤적뒤적하면서 이 주머니에서 한뭉치, 저 주머니에서 한뭉치, 등등 해서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오십만원을 만들어 건네주었다는 것이다. 당시 오십만원이면 모르긴 해도 지금의 이삼백만원은 족히 됨직한 큰 돈이었다. 나중에 후배가 그 돈을 갚았는지 어쨌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지만 그 사건으로 고형의 기인행적에 하나의 일화가 추가되었다.
기인이랄 정도까지는 아니라 해도 책상물림 대학원생들에게 고형의 행적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무슨 전문대학을 나와 한전에 입사하였는데 강원도 산간벽지의 출장소에서 근무를 했다. 그곳은 하루 종일 노닥거리는 것이 일이어서, 배터리를 들고 냇가로 나가 고기를 감전시켜 잡아먹는다던가 동료들과 내기화투 등으로 소일하곤 했다. 내기 중에는 다음과 같은 무식한 종목도 있었다. 손잡이를 돌리면 발전이 되는 수동식 발전기가 있는데(옛날 영화에 나오는, 한 손으로 수화기를 들고 다른 손으로 손잡이를 돌리는 전화기에 그런 발전기가 붙어 있다) 빨리 돌릴수록 전압이 높아진다. 이 발전기를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이 마주앉아 발전기에서 나온 두 가닥의 전선을 각자 하나씩 잡는다. 그러고서 손잡이를 돌리는데, 처음에는 천천히 돌리다 점점 속도를 올려간다. 이를 악물고 견디다 결국 먼저 손을 떼는 쪽이 지는 것이다. 나중에는 전기가 더 잘 통하도록 바닥에 물을 뿌리고 맨발로 앉아서 시합을 했다고 한다. 고형의 이론에 의하면 상당한 수련을 쌓고, 전압을 서서히 높여가면 백볼트 정도도 무난히 견딜 수 있다고 했다. 아무도 실험을 해 본 사람이 없으니, 믿거나 말거나.
고형의 경력 중 백미는 권투선수 경력이었다. 권투시합이 열리면 그날의 메인게임이 있고 그 앞에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오픈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오픈게임이 너무 빨리 끝나버려 메인게임과의 사이에 시간이 비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임시게임을 준비해 놓는다. 그 임시게임에도 정식 선수가 있고 후보선수가 있다. 고형은 그 예비 임시 오픈게임의 후보선수였다. 그런 변두리 선수들이 실제 경기장의 링에 올라가 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었다. 어느 날, 시합에 출전할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그만 1회전에 한방 맞고 케이오를 당하고 말았다. 그것으로 그의 '선수생활'은 데뷔와 동시에, 3분을 미처 넘기지 못하고 종지부를 찍었다. 공식전적 1전 0승 1패.
나중에 그는 어느 대학에 편입을 해서 4년제 대학을 마치고, 또 이런저런 직장생활을 하다가 대학원에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형편이 그러하니 여직 노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실험실에서 여럿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노교수 한분이 들어왔다. 노교수는 별말 없이 이리저리 둘러보다 실험대 앞에 앉아 새로 조립한 기판을 손보는 데에 열중하고 있던 고형의 등 뒤에 가서 섰다. 잠시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던 교수가 고형의 어깨너머로 물었다. 자네 몇 살인가? 서른여섯입니다. 갑작스런 질문에 그는 바짝 얼어서 대답했다. 장가 안갔지? 네. 다시 한동안 잠자코 내려다보고 있던 교수가 말했다. 짤라버려! 그 말을 듣고 잔뜩 긴장해 있던 우리의 고형, 네! 하면서 들고 있던 니퍼로 다른 손으로 잡고 있던 전선을 뚝 잘라버렸다. 그 사건 이후로 우리는 고형을 보면 ‘짤라, 짤라’ 하면서 포복절도하곤 했다.
사고무친으로 혼자 세상을 헤쳐온 그에게 세상에 믿을 것이란 없었다. 예를 들어 그에게는 은행도 믿을만한 곳이 못되었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옷은 다 입고 다니고, 가진 돈은 다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오십만원이라는 돈이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건 옷 속에 그의 전재산인 몇백만원이 항상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고형과 가까웠던 선배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실제로 그랬는지, 누군가의 사후 해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그런 그가, 열 살 정도나 아래인 누군가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지방의 모 대학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그를 추억하듯 그가 나를 추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은 기억에 잘 남지 않고 무언가 극적인 삶의 모습들이 기억에 남게 마련이다. 누구의 삶인들 극적이지 않을까 보냐마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극적으로 보이는 삶의 모습이라는 것은 있다. 가끔 그런 삶들이 옆을 스쳐 지나간다. 고형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생각할까. 당사자에게는 고단하였을지 모르나 그들을 지나쳐 간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즐거움이 남는다. 적어도 오랜만에 모인 연말 술자리 같은 곳의 유쾌한 얘깃거리로라도. 그래, 그러고 보니 실험실의 고물 흑백 티비에서 김재박이 어거지 번트로 안타를 치고 한대화가 홈런을 날려 일본에 역전승하는 것을 보며 다함께 미쳐서 펄쩍펄쩍 뛰던, 그 시절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