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y the best

by craquelure

우리 집에서 전축을 산 것은 내가 대학을 들어간 얼마 후였다. 참으로 고대하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드디어 우리집에도 전축이 생긴 것이다. 전축이 생겼으니 레코드판을 사야지, 하고 광화문에 달려가 처음 샀던 것이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얼린 협주곡이었다. 윗입술이 약간 위로 들린, 소녀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정경화가 바이얼린을 연주하는 모습이 인쇄된 재킷이었다. 특별히 정경화의 연주를 고른 것도 아니었고, 그 곡을 찾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차이코프스키라는 이름을 보고 뽑아들었을 뿐이었다.

Kyung-wha chung Tchaikovsky Sibelius.jpg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특별한 우연을 인연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인연이라 할 수밖에.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정경화의 연주 모습은 그다지 호감이 가는 얼굴도 아니었고 감았는지 떴는지 모르게 희뜩거리는 눈 모양이라든가 어딘가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과장되어 보이는 제스처 등, 요컨대 내 타입이라 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 판을 그대로 들고 나왔던 것은 그래도 아마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어쩌면 나와 같은 성씨라는 데에서 오는 호기심 같은 것이 작용했었는지 모른다. 훗날 그가 나와 같은 띠인 데다가 생일도 나와 같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고는 놀란 적이 있다. 글쎄, 그것도 인연의 한 요소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차이코프스키의 그 곡을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고등학생 과외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이래야 이것저것 빼고 나면 한 달에 판 한두 장을 사기에 빠듯한 정도였으니 몇 장 되지 않는 판을 신물이 나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 뒷면의 곡을 한두 번씩 듣기 시작했다. 뒷면에는 시벨리우스의 바이얼린 협주곡이 있었는데, 차이코프스키류의 선율에 익숙한 클래식 음악 초심자의 귀에 그다지 편한 곡이라 할 수는 없었다. 단지 덤으로 따라온 것으로 여기는 정도로 처음에는 어쩌다 한 번씩 들어보곤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후, 내가 그 판을 턴테이블에 올려놓을 때는 항상 그 뒷면을 위로 해서 올려놓고 있었다. 처음 내 손을 이끌었던 차이코프스키는 이미 까맣게 잊혀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왜 그 곡에 그렇게 빠져들게 되었는지 뚜렷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감미로운 것도 아니고,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감상적인 것도 아닌, 어쩌면 속을 후벼파는 것 같은 선율과 음향이 내 안 어딘가에 감추어져 있던 들끓는 이십세의 격정 같은 것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대개 연애의 시작이 그렇듯이 나는 맹목적으로 그 곡에 빠져들었다. 미팅을 한다거나 할 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가라는 식의 질문을 받는 경우 늘 대답이 난처했지만, 당시, 그리고 이후 오랜동안, 가장 좋아하는 곡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만은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나는 정경화가 연주한 그 시벨리우스의 바이얼린 협주곡과 연애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 협주곡을 몇 번이나 들었을까. 적어도 수백번은 되지 않을까. 어쩌면 천번이 넘을지도 모른다. 자연스러운 결과로 나는 바이얼린의 선율은 물론,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악기들의 미묘한 음색의 변화와 세세한 소리의 떨림까지 완벽하게 암기하고 있었다. 아침에 등교할 때 버스에 올라 타 자리를 잡고 앉으면 일단 눈을 감고, 팔짱을 끼고, 자는 듯 자세를 잡은 다음 머릿속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래서 1악장 시작부터 3악장 끝까지 온전히 끝내고 나면 한강 다리쯤, 다시 눈을 감고 두번째 반복하고 나면 버스가 학교 앞에 도착해 있곤 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1악장의 종결부, 독주의 빠르고 기교적인 아르페지오에 이어 두 번의 큰 물결 같은 것이 지나간 직후 오케스트라의 바이얼린 총주가 휙휙 내던지듯 튀어나오는 짧은 몇 마디였다. 그 부분을 지나갈 때 옆에 누가 있었다면 아마 혼자 눈을 감은 채 얼굴이 벌게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하나의 곡을 온전히 듣는다는 것은 섹스를 한번 치르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버스 좌석에 앉아 혼자 머릿속으로 연주하는 것은 그래서 일종의 수음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매 악장마다 한번씩, 두번 반복이었으니 말하자면 등교할 때마다 여섯번씩 절정에 올랐던 셈이다. 나중에는 카덴짜 부분을 내 마음대로 변형해서 연주하기도 하는 경지에까지 올랐으니 그것은 과연, 열애라 할만했다.


지금은 예전처럼 음악을 듣지 않는다. 연애의 열정이 지나가듯이 집의 전축 앞에서, 종로와 명동의 음악실에서, 그리고 학교의 음악감상실에서 흘려보냈던 수많은 시간들은 나의 성장과정에 남겨진 하나의 흔적일 뿐이다. 머릿속으로 그 곡을 연주하는 일도 더 이상 없다. 그러나 가끔 지하철 역 플랫폼에 서서 차를 기다릴 때, 곧 열차가 도착합니다, 라는 안내방송에 이어 터널 저쪽 멀리서 차가 다가올 때면 마치 옛 연인을 떠올리듯 그 곡의 맨 처음, 아련하게 울려오는 오케스트라의 배경음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역 구내에 열차가 진입하기 직전에 나오는 경보음 때문이다. 크게 키워 놓고 들어 보면 그 두 소리는 놀랍도록 흡사하다. 내 귀에만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56vWmZ1Z6GM&list=RD56vWmZ1Z6GM&start_radio=1


violin concerto in d minor, sibelius, 정경화/andre previn/london symphony orchestra
mov. 1 allegro moderato

mov. 2 adagio di molto

mov. 3 allegro, ma non ta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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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was Kyung-Wha Chung's first recording, made when she was 22, just after her sensational London debut in the Tchaikovsky Concerto with the same orchestra and conductor. It is splendid. Only a young, radiantly talented player could make these two tired warhorses sound

so fresh and vital; only a consummately masterful one could sail through their daunting technical difficulties with such easy virtuosity and perfection. Her tone is flawlessly beautiful, varied in color and inflection; she puts her technical resources entirely at the service of the music, giving every note meaning and honestly felt expression without exaggeration or sentimentality. The Tchaikovsky has charm, humor, sparkle; the slow movement is dreamy, wistful, and unmuted but subdued and inward. The Sibelius is dark and bleak but full-blooded, passionate, and intense. The orchestra sounds and plays better in the Sibelius.

--Edith Eisler



예전 사람부터 요즘 사람까지, 대가의 반열에 이름을 올린 거의 모든 바이얼리니스트들의 거의 모든 버전을 다 들어보았지만 이 곡에 있어서 아직 이 연주를 능가하는 것은 없었다. 독주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에 있어서도 그렇다. it's simply the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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