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移巢)

by craquelure


30년 넘게 앉아있던 자리를 옮기는 일이었으니 작은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던 것 같다. 웬만한 건 다 버리면 되는 일이라서.


이사라 할 순 없고, 이소라 해야겠다. 그런데 이렇게 써놓고 나서 찾아보니, 이사의 한자가 移徙이다. 옮길 移자에 옮길 徙자다. 나는 지금까지 '집을 옮긴다'는 뜻으로 移舍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사라 해도 무방하겠다, 뭐 어쨌거나.


한쪽 벽면이 온통 유리창이라서, 개방감이 있어서 좋다. 단, 아침이면 비쳐드는 햇빛에 방 안 온도가 후끈 올라간다. 겨울을 나고 나면 아무래도 커튼을 달아야 할 것 같다. 그래도 6층에서 내려다보이는 골목길의 풍경이 그리 나쁘지 않다. 옥상에 널려있는 빨래들, 느릿느릿 길을 따라 가는 자전거, 전봇대와 전선들. 이제 마당이 있는 집들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옥상에 드문드문 심어진 나무들.. 이제 더이상, '주택가'라는 낱말은 쓰일 데가 없을 것 같다.



골목.png



이소 후 첫 가을이다. 추석이 지나고서야 좀 선선한 기운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가을의 한가운데라는 중추(仲秋)란 말도 빛이 바랜듯하다. 지난 여름, 정말 더웠다. 이제 중추를 입추로 바꿔 불러야 하지 않을까. 먼 훗날, 내가 이소를 했던 때를 떠올리며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어."라고 말하게 될까. 아니면, "그해 여름만 해도 그런대로 견딜만 했어."라고 말하게 될까. 아니, 그 '먼 훗날'이라는 게 과연, 있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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