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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은 Jan 08. 2021

한 여름, 감동의 보쌈

한국음식이 그리울 때

나는 일본에서 현재 유학 중인 유학생이다.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면 문득, 특정 한국 음식이 미친 듯이 먹고 싶어 질 때가 있다. 짜장면 한 젓가락, 잘 익은 묵은지로 만든 김치찌개 등 갑자기 너무나 먹고 싶어 지는 음식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언니와 함께 살았기에 가끔 한국음식이 생각날 땐 만들기 쉬운 제육볶음이나 김치볶음밥을 해 먹곤 했다. 그런데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던 어느 여름날,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는데 보쌈 영상이 떡하니 떠있었다. 나는 홀린 듯 그 영상을 시청했고 보는 내내 '와 맛있겠다'를 연신 외치며 군침을 몇 번이고 삼켰다.

보통,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나더라도 일시적으로 끝나곤 했는데, 그날은 유독 보쌈이 너무나도 먹고 싶어 졌다.


하지만 나는 보쌈을 어떻게 만들어 먹는지도 몰랐고, 그저 어려운 음식으로 여겨왔기에, 시도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 보쌈을 먹지 않으면 곧 죽을병에 걸릴 것처럼 먹고 싶었다.

결국 언니에게

"언니... 나 너무 보쌈이 먹고 싶어 미칠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러자 언니는 

"그래? 나도 요 근래 먹고 싶었는데 만들어 먹자!"라고 너무나도 쉽게 말하던 것이 아닌가.

별거 아니지만 그때 언니가 굉장히 든든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 우리는 미친 듯이 보쌈 만드는 법을 검색하고 마치 시험 치는 수험생인 것 마냥 열심히 레시피를 공부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보쌈을 먹겠다는 그 설렘 하나로 잠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우린 곧바로 마트로 향해 보쌈 재료를 한가득 샀다.

당시 20살, 요리 경험이 별로 없던 나에게 어렵게만 느껴졌던 보쌈 만들기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정말 별거 아닌 레시피지만 혹여나 하여 적어둔다.


1. 먼저 돼지고기 거리를 산 다음 물에 양파 생각 파 커피 후추 등 정말 별의별 향신료를 다 때려 넣었다. 혹여나 잡내가 나서 못 먹을까 봐 우린 정말 집에 있는 모든 향신료를 아끼지 않고 넣었다. 여기에 된장을 넣으면 더 구수해지고 맛이 좋아지지만 일본에는 미소된장만 팔았기에 그냥 생략했다.

2. 그렇게 모든 향신료와 잡내 잡아줄 것들을 넣고 팔팔 끓인 뒤 돼지고기를 투하. 그리고 천천히 돼지고기를 익혔다. 대략 40분은 삶은 듯하다.

아직도 이때의 보쌈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돼지고기가 익어가는 동안 그 고기 향이 어찌나 맛있게 느껴지던지 아직도 생생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막 냄비에서 꺼낸 김이 솔솔 나는 돼지고기를 썰어 한입 맛보았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입에서 녹는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정말 한국에서 먹었던 그 어떤 비싼 보쌈보다도, 엄마가 삶아주신 보쌈보다도 훨씬 맛있게 느껴졌다. 감히 내 인생 최고의 수육이라고나 말할까.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만들어 냈구나 라는 감동에 언니와 나는 그저 기뻐하며 감탄했다. 감탄하며 썰어낸 보쌈과 오로지 보쌈과 함께 먹기 위해 사온 한국식 쌈장,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아끼는 할머니표 김치까지 꺼내 접시에 담은 다음, 정말 세상 최고로 행복한 사람처럼 순식간에 먹어버렸다. 물론 일본에는 새우젓도 없고 무말랭이도 없었기에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것들이 없어도 우리는 그 많던 보쌈을 누구보다도 더 맛있게 먹었다.

보쌈을 한가득 먹고 나서는 한국표 옛날 빙수가 먹고 싶어 져서 얼린 우유를 깨서 팥과 사과잼을 넣어 언니와 말없이 퍼먹었다. 

식후 달달한 빙수는 어떤 말이 필요한가.

뜨거운 보쌈을 먹은 뒤 시원하고 달달한 빙수까지... 정말 완벽한 마무리였다.

무더운 한여름, 왜 그렇게 보쌈을 먹고 싶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한국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최고치로 솟아 있었을 때 여서가 아닐까. 약 2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아직도 나는 여름만 되면 저 보쌈이 생각난다. 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감동적인 음식이어서 그런 것일까. 그래서인지 우리는 매년 여름마다 보쌈을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달달한 팥빙수까지.


아마도 앞으로 매 여름마다 나는 보쌈과 빙수를 만들어 먹지 않을까. 그때의 감동과 추억을 곱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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