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여름의 역사_태풍의 기억 편

다들 피해는 없으신가요

by MJ


할머니 집이 바닷가이기 때문에 나에겐 태풍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꽤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태풍은 매미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동해안을 지나간 그 며칠 사이가 추석 연휴였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할머니 집에 머물러 있었다. 전부 기억이 나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정전이 되어서 모두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밤이라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고 태풍이 잠잠해질 때까지 앉아 있었는데 두려웠던 기억은 그다지 없다. 아마도 열 명이 넘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있었기 때문이리라. 지나고 보니 아주 오랫동안 회자될만한 강력한 태풍이었지만 태풍 매미가 얼마나 많은 사상자와 피해를 남겼는지 그때는 어려서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태풍 힌남노. 작년에 힌남노가 할머니집을 지나갈 때는 직장인라 할머니 집에 갈 일이 잘 없었기도 하고, 본가에서도 할머니집에서도 아주 먼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태풍이 온다는 뉴스를 보고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웬걸, 힌남노는 할머니네 작은 바닷가 마을에 꽤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갔다. 마을 군데군데가 잠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바닷가와 제일 가까운 집들은 부서지기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태풍이 지난 뒤 엄마가 마을에 가보고는 물에 반쯤 잠겨있는 차들과 파도에 부서진 집들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었다. 파도가 집을 부수다니! 할머니가 바다 사람이라 바다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다고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태풍의 위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작년 힌남노 때문에 그런지 올해 태풍 카눈이 또 큰 피해를 줄까 봐 퍽 걱정이 되었다. 물론 바닷가 마을이기 때문에 해일이나 태풍이 오면 피할 수 있는 대피소는 동네마다 있다. 힌남노 때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대피소로 몸을 피하셔서 별다른 피해는 입지 않으셨다. 이번 태풍도 뉴스에서 정말 위험하다고 하니 외출을 하지 마시라고 꼭꼭 당부드렸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는 별다른 걱정이 없는 모습이셨다. 생각해 보니 80년을 넘게 바닷가에서 살아오며 태풍을 얼마나 많이 겪으셨겠는가. 그 옛날엔 대피소도 없었을 것이고 맨몸으로 태풍을 맞고 피해도 직접 수습해야 했으리라. 그래서 그런지 위험하니 잠깐 도시로 가 있자고 해도 집을 지켜야 한다고 떠나려 하지 않으신다. 카눈이 지나가는 동안 엄마와 나는 마음을 졸이며 전화 통화로 번갈아 상황을 확인했고, 다행히 이번 태풍 카눈이 마을에 큰 피해를 입히지는 않았다.

바다를 생각하면 흔히 태양 아래 파랗게 반짝이는 수면과 잔잔히 일렁이는 파도를 떠올릴 텐데 그 모습은 바다 보여주는 모습 중 극히 일부이다. 날이 궂은날 해변가나 방파제 끝에서 바다를 보고 있자면 검푸른 물과 그보다 더 검은 파도가 울렁이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할머니와 엄마도 바닷가 사람이지만 바다에 대해 전부를 알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바닷가 사람들은 무덤덤하게 그냥 사는 것 같아도 육지 사람보다 바다를 더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집 식구들은 집 앞바다에서도 불필요하게 멀리 나가지 않고 모르는 바닷가에서는 수영도 꺼린다.

기후가 변하면서 앞으로는 태풍의 위력도 더욱 강해진다고 한다. 여태껏 겪어왔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재해의 규모는 오래된 바닷가 마을 사람들은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할머니네 마을뿐만 아니라 재해로 인한 대비가 어려운 모든 시골 마을들이 염려되는 한편, 모든 마을과 도시가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최대한 예방할 수 있는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