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한마디

라쳇의 배려

by 봉팔 인

내가 세상에서 제일 맛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식은 아메리카노다.

남기지 말자는 꼬장 한 철학 때문에 식어도 남김없이 마시지만,

식은 아메리카노와 아메리카노는 그 온도만큼이나 천지 차이다.


뜬금없이 아메리카노 이야기는 왜 꺼내냐면,

라이딩으로 너무 피곤하지만, 지금 남기지 않으면 나의 기억과 느낌도

식어버릴까 봐 따끈할 때 적고 싶어서 프롤로그로 꺼내본다.


내가 좋아하는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에 나오는 문구다.

봄의 흙은 헐겁다.

언 땅이 녹고 햇볕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흙의 관능은 노곤하게 풀리면서 열린다.

봄에 땅이 녹아서 부푸는 과정들을 들여다보는 일은 행복하다.


헐거운 흙냄새 맡으러 1여 년 만에 클럽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러 양평으로 향했다.

일명 그룹라이딩은 삼삼오오 모여서 특정 목적지를 두고 함께 자전거를 타는 것을 의미하며, 투어라이딩은 근교나 일상의 거점을 좀 더 벗어나서 여행 삼아 주변도 둘러보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을 말한다.

자전거는 너무나 좋은 운동이자, 취미지만 일부분 위험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룹라이딩을 할 때는 수신호와 단체 활동 그리고 서로 간의 배려가 매우 중요하다.


양평은 서울에서 차로 1시간이면 가지만, 봄의 흙냄새는 서울보다 훨씬 많이 난다.

괜히 은퇴를 앞둔 남자들이 양평 전원주택 노래를 부르겠는가.

내가 알기로 일부 여자들도 있지만 남자들이 훨씬 많은 걸로 알고 있다.

홍천강의 윤슬과 팔봉산의 산세까지 한 폭 한 폭 눈에 잘 담았다.


오늘 적고 싶은 자전거 이야기는 사실 따로 있다.

자전거를 타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쉽게 설명하면 뒷바퀴 중간에 보면 기어비를 조정하는 스프라켓이 있고 휠 중간에 보면 허브와 그 안에 라쳇이 있다.

페달링을 열심히 하다가 어떠한 상황이 발생되어서 페달링을 하지 않을 때, 자전거는 관성에 의해 계속 앞으로 간다. 우린 그것을 공회전이라 부르며 그 때 라쳇에서 소리가 난다. 트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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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쓸데없는 자전거 어느 부위를 이야기하냐면,

그룹라이딩을 하면 자동차 도로를 달리게 된다.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차’에 해당하기 때문에 자전거도로가 없는 경우엔 자동차 도로를 공유하게 된다.

그땐 안전을 위해서 1열로 팩을 지어서 줄줄이 달려야 하고,

1번 라이더부터 2번, 3번 쭉쭉 순서대로 달리게 된다.

그리고 자전거는 역학적으로 바람, 즉 공기와의 싸움이다.

1번 라이더가 가장 힘들고, 그 순서대로 덜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그룹라이딩을 해보면 사람들의 성향을 잘 알 수 있다.


위에 라쳇소리는 공회전을 할 때 나는 소리라고 했다.

공회전은 어떨 때 할까? 페달링을 안 해도 될 때이다.

내가 쉬고 싶을 때, 내가 쉬어도 될 때.

그룹라이딩을 하는 도중에는 맨 마지막 후미 라이더를 제외하고는 쉬고 싶을 때

편히 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 뒤에 누군가 내가 갑자기 급정거를 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 넓은 등판만 보고 쫓아가는 것이다.

그럼 두 번째로 내가 쉬어도 될 때는 언제일까?

앞에 있는 라이더도 드디어 힘에 부쳤는지, 속도가 줄어든다.

나는 감사하게도 뒤따라 가다 보니 훨씬 힘이 적게 들어 페달링은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바로 라쳇이 열심히 소리를 내뿜는다.


라쳇은 그만큼 나 아직 괜찮아요, 나 아직 힘 남아있어요라는 증거의 소리다.

그리고 그 소리는 누군가의 희생과 더 큰 수고로움의 결과다.


뒤따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로테이션을 받아줄 수 없다면,

기어비를 살짝 내리고 페달링을 가볍게라도 할 수 있게 만들어서 라쳇 소리를 최대한 나지 않게 한다.

난 그것이 매너라고 생각한다.

로테이션은 앞에서 요청하는 것보다 속도가 느려지면, 뒷주자가 외쳐주는 것이 좋다.

나 힘들어요 외치기 전에 힘든 것 없냐고 물어봐주는 게 좋은 것처럼 말이다.


오늘 그런 매너 있는 분들과 헐거운 봄의 흙냄새 맡을 수 있어서

힐링되었던 일요일이었다.


라쳇소리 한 번 들어보세요!

https://youtu.be/5 nWAwj3 wZh8? si=4 QW6 okLCBBvIIrIo


#자전거 #봄나들이 #그룹라이딩 #라쳇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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