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두렵고 설레는 순간이 있다.

by 봉팔 인

20대 중반이었던 2008년,

난 그 누구보다 빨리 취업을 하겠다는 야망과 욕심이 가득했다.

취업이라는 그 자체보다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라는 강박과 의무감이 앞섰다는 게 적확할까?

나의 부름에 응해주셨는지, 다행히도 난 졸업도 하기 전에 서울에 취업하게 되었다.

전공과 상관없는 생활용품 기업의 영업사원.

왜 졸업생들로 이루어진 나름대로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는 해운 산업으로 가지 않았냐고? 아직까지도 묻는 분이 간혹 계신다. "저는 새로운 선택을 통해 개척하고 싶었습니다, 또는 선배님들이 포진되어 있는 곳에서 후배로서 넘어설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생각해서 다른 선택을 하였습니다."와 같은 정해진 답변을 쏟아내었지만, 사실은 그냥 여러 가지 선택지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밝힌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단 한 번의 거창하지 않았던 선택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나의 의지가 아닌 선택은 없었다. 그 덕분에 지금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점(dot)을 담당하고 있다.


완행인지, 급행인지 모를 현실은 바로 이곳 프랑크푸르트에 와 있다는 것이다.

아내가 온 지 한 달, 딸아이와 내가 온 지 이제 사흘째.

딸아이가 학교에 처음 다녀온 날이기도 하다.

알파벳만 겨우 뗐다고 하기에도 아직 헷갈려하는 상황임에도 첫날 소감을 물어보니, 즐거웠고 또 빨리 가고 싶다는 말에 마음이 참 뭉클했다.

독일에 오기 전에 물었을 때는 너무 가기 싫다, 여기가 좋다, 왜 가느냐 라며 얼마나 투덜거렸는지...

너라고 왜 무섭지 않았겠느냐, 두렵지 않았겠느냐.


다시 돌아가 2008년 여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보라는 면접관님의 제안에,

"오늘 면접에 오기 전까지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저의 마음이, 면접을 거치면서 설렘으로 많이 변화하였습니다. 그 양가적인 감정이 뒤섞일 수 있었던 이 시간, 이 기회를 저에게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꼭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마쳤다.

16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두 가지의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순간은 인생에서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딸아이도 오늘이 평생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다.


봉팔 인


#입학 #취업 #두려움 #설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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