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있는 사람
퇴직을 앞둔 남자들의 로망은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인가 봅니다. 50, 60대 남자들의 최애 프로그램이 '나는 자연인이다'인 것을 보면 자연과 함께하고픈 그들의 소망이 보입니다. 반면 퇴직을 앞둔 여자들의 소망은 그동안 직장이나 가정에 얽매여서 하지 못했던 일을 해 보는 것인 것 같습니다.
퇴직을 앞둔 남자들은 시골집이나 땅을 보러 다니는 것이 퇴직을 준비하는 일의 시작이고, 퇴직을 앞둔 여자들은 문화센터 프로그램을 검색하는 것으로부터 퇴직을 준비합니다. 무엇을 배워서 어떻게 살 것인가가 그녀들의 고민이라면 어디에 땅을 사서 어떻게 전원주택을 지을 것인가가 남자들의 고민입니다. 이렇듯 금성 남자 화성 여자가 한평생 갈라서지 않고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관습 때문이었을까요? 몸을 베인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었을까요? 이제는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포기와 인정 사이를 오가고 있는 탓일까요?
퇴직 후 남편은 시골집에서, 아내는 도시 집에서 사는 경우를 가끔 봅니다. 저의 남편도 보통 남자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퇴직 후 땅을 가꾸는 일로 소일거리를 하고 있습니다. 묘목값이나 종잣값과 들인 노력에 비하면 턱없는 소출이지만 소일거리로 시간을 낚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일거리라고 하면서도 작물을 선택하는 기준이 농약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작물, 매년 심지 않고 한 번만 심으면 매년 소출을 얻을 수 있는 작물이라니요. 그래서 매년 심어야 하는 채소류는 심지 않습니다. 땅에 작물을 심는 이유가 친환경 농작물을 먹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저는 어이가 없었지만 내가 도와줄 일이 아니었기에 그것이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매년 다시 심어야 하는 작물은 제외되어서 남편의 땅에는 그 흔한 상추도 없습니다. 무화과, 뽕나무, 산딸기, 블루베리, 앵두, 보리수, 아로니아, 돌배나무, 꾸지뽕 등 제 기준으로는 특이한 작물만 있을 뿐.....
매년 봄이 되면 쑥, 취나물, 머위, 땅두릅 등이 남편의 땅에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반가운 것은 땅두릅입니다. 매년 봄, 땅두릅을 선택한 남편에게 칭찬해 줍니다.
마트에서는 이른 봄부터 두릅이 판매되기 시작하지만, 남편의 땅에서는 봄이 무르익을 무렵부터 두릅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재배한 두릅도 땅에서 나오고 남편이 기르는 두릅도 땅에서 나오는데 향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남편이 기르는 땅두릅의 진한 향은 봄을 마음껏 느끼게 해 줍니다. 겨울 동안 땅의 정기를 품고 있어서 진한 향기를 내뿜는 것일까요?
향이 진하여 젊은 딸과 아들은 두릅을 잘 먹지 않습니다. 두릅의 효능을 살펴보니 사포닌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있어서 심혈관 건강, 당뇨, 장 건강, 항암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 봄이 되면 추위에 익숙했던 몸이 봄의 환경에 적응하느라 쉽게 피로를 느끼는 춘곤증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스트레스,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하니 젊은 자식들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조리법인 튀김으로 해 보았습니다. 튀김반죽을 다른 튀김을 할 때보다 약간 무르게 하여 튀김옷을 입혀 튀겨내면 됩니다. 튀김을 집에서 하기 어려운 이유는 사용한 기름을 버리는 일이 번거롭기 때문이지요. 데쳐 놓으면 손도 대지 않던 두릅을 딸과 아들은 맛있게 먹습니다. 먹기 싫어한다고 그냥 둘 것이 아니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합니다. 튀기는 요리는 모든 재료를 더 맛있게 하는 비법이 있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기름진 음식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지만 고소하고 바삭한 식감은 어떤 재료도 맛있게 만드는 비법입니다.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면 공연히 기분이 좋고 마음이 들뜨게 하는 사람이요. 친한 후배 중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 친구처럼 대하는 후배에게 나이 든 이는 무례하다고 하지 않고, 후배보다 어린 친구들은 주책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나이 들었다고 밀치지 않고 친구같이 대해줘서 좋다고 하고, 나이 어린 친구들은 잘 이해해줘서 좋다고 합니다. 문득 두릅을 튀기며 모두에게 잘 맞추고 서스름없이 대하는 후배가 떠올랐습니다. 튀김을 모두가 좋아하는 요리이듯 후배는 사람들을 어떻게 튀기는 걸까요? 고소하고 바삭한 성격 탓일까요? 아마도 그 후배의 마음이 따뜻해서 일 겁니다. 드러내지는 않지만 후배 마음에 깔린 인간에 대한 애정 때문이겠지요. 화향천리 인향만리라고 합니다. 후배의 따뜻하고 고소하고 바삭한 성격으로 인해 근처에 있는 이들은 행복합니다. 멀리 있어도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향기를 멀리까지 피우는 후배에게서 오늘도 배웁니다.
고소하고 바삭하고 따뜻하게 사람을 대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