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가 제철이다. 봄에 피는 복숭아꽃은 매혹적이다. 복숭아꽃을 보노라면 반듯하게 흐트러지지 않고 자신을 세우고 있는 발레리나가 떠오른다. 단단하게 가지에 붙어있는 꽃은 아름다우면서도 강인하고 단아하여 감히 꺾을 수 없게 한다. 자꾸 보면 닮아질까 싶어 복숭아꽃이 필 때면 일부러 복숭아밭이 많은 곳으로 길을 돌아서 다니곤 한다.
열매의 빛깔도 꽃 빛깔과 흡사하다. 절대로 맛이 없을 것 같지 않은 빛깔. 그래서인지 복숭아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나도, 우리 가족도 복숭아 철이 되면 다른 과일은 잘 사지 않는다. 장기 보관이 안 되는 복숭아는 제철에 많이 먹어야 하기에. 지난여름은 맛있는 복숭아를 먹지 못한 채 넘어갔다. 잦은 비로 인해 당도가 떨어져서 맛이 없었다. 그 빛깔에 결코 있을 수 없는 맛이었다.
올해도 비가 잦아 염려되었지만, 올해는 복숭아 맛이 괜찮다. 복숭아밭에 직접 가서 사 보기도 하고, 귀농하여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다는 농부로부터도 사 보고, 지인이 보내 준 다른 지역의 복숭아도 먹어 봤는데 모두 맛이 좋다. 먹기 전 향기를 먼저 맡아보며 미리 군침을 만들어보기도 한다.
많은 이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또 싫어하는 아니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이들도 있다. 복숭아털로 인한 알레르기 때문에. 영화 ‘기생충’에서도 지하 셋방에 살던 가족들은 부잣집에 기생하려고 가정부를 쫓아내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가정부가 복숭아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아내고 몰래 복숭아털을 가정부에게 뿌린다. 기침하는 가정부를 결핵환자라고 꾸며 쫓아낸다. 그 작은 털이 여러 사람의 인생을 바꿔버리다니….
어떤 이는 복숭아를 만지는 것은 물론이요 아예 먹지 못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만지지는 못해도 껍질을 벗겨주면 먹는 친구가 있었다. 깎아주라고 그러면 먹는다고 웃던 친구는 60을 넘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 버렸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당뇨로 인한 합병증을 앓아 온 친구가 남편으로부터 신장을 이식하고 괜찮나 싶었다. 각자의 삶을 사느라 자주 보지 못하고 아주 가끔 점심 먹고 차 마시는 정도였는데, 어느 날 문득 친구를 만난 지가 오래된 것 같아 전화하니 받지 않는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걱정된 마음에 다른 친구에게 이 소식을 알리니 그 친구도 전화해 보니 역시 받지 않는다고 한다. 부재중이 찍히면 반드시 다시 전화를 걸어오는 친구인데….
며칠 후 부고가 떴다.
아직은 죽음보다는 삶의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나이인데….
이제는 자기만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는 나이인데….
우리끼리 끽끽거리며 이곳저곳을 쏘다녀도 뭐라고 할 사람도 없는 나이인데….
미뤄두었던 꿈도 꺼내 보고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할 수도 있는 나이인데….
할머니라는 새로운 역할을 기대하며 자식에게 하지 못했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나이인데….
하나도 맞지 않아서 로또와 똑같다는 남편도 적당히 품어주며 마음의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나이인데….
혼자 남겨진 친구의 딸은 준비하는 취업은 잘 되었는지, 하나뿐인 딸을 먼저 보낸 친구의 어머니는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아내의 빈자리를 그 남편은 어떻게 채워가고 있는지.
덧없는 생각들이 스쳐 간다.
복숭아를 한입 베어 물며 나를 본다.
그저 감사하다를 읊조리는 이중적인 나를….
내일은 이름으로나마 친구가 남아있는 절을 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