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박 찌개

by 정미선

오늘 저녁 메뉴는 애호박 찌개다. 돼지고기와 애호박, 양파, 대파 정도만 있으면 맛나게 쉽게 끓일 수 있으니 가격 대비 가성비 좋은 메뉴이다. 애호박과 양파는 채 썰어 준비해 두고, 찌개용으로 썬 돼지고기는 액젓, 마늘, 참기름, 고춧가루를 넣어 주물러서 냄비에 먼저 볶는다. 거기에 채를 썬 애호박(애호박을 너무 가늘게 채를 썰면 끓이는 과정에서 녹아버린다. 그러니 약간 두툼하게 썰 것)과 양파를 넣어 물을 붓고 끓인다. 간이 약하면 새우젓을 조금만 넣으면 완성.


퇴직한 남자들이 점심시간에 지인을 만나 자주 먹는 메뉴 중 하나가 애호박 찌개인 것 같다. 퇴직한 나의 남편도, 퇴직한 지인의 남편도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친구를 만나 애호박 찌개나마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다면 그래도 노년이 편안한 것으로 생각해야 할까.


퇴직을 해 보니 늙으면 돈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를 실감한다. 주어지는 돈은 퇴직 전보다 현저히 줄어들고 매달 같은 돈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리는 것도 사실이다.


퇴직을 준비하는 첫 번째가 경제적인 준비를 해 두는 것이다. 한 달 평균 내 생활비가 얼마나 드는지를 계산해 보고 그 액수를 어떤 방법으로 충당할지를 퇴직 10년 전부터 면밀하게 계획을 해야 할 것 같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축복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100세를 산다는 전제하에 준비해야 할 것 같다. 퇴직 후 몇 년이 지나면 경조사비가 많이 줄어들어 지출이 많이 줄어든다고는 하나 최저생계비에 약간의 예비비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이 병원비다. 아프지만 않다면 큰돈 들어가지 않는다고 먼저 퇴직한 분들은 말한다. 하지만 안 아프고 늙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퇴직 전 준비해야 하는 두 번째는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이다. 어떻게 건강을 관리해야 하는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정희원)’와 같은 책이 그나마 천천히 건강하게 늙어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세 번째 준비해야 할 일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꺼리를 만드는 것이다. 의무적으로 가야 할 곳이 없기에 자칫 게을러지고 무기력해질 수 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루틴을 만드는 일도 생각해 두어야 한다. 다행히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배울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그동안 직장이라는 곳에 얽매여 하지 못했던 일을 새롭게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배우는 내용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건강을 위한 활동, 배워서 남 줄 수 있는 내용 등이면 좋지 않을까 한다. 퇴직 후 자신이 무가치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기분 또한 견디기 힘들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시도해 보는 것도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는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네 번째는 혼자서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외로움이 아닌 고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힘. 공연한 열등감이 생기면서 먼저 손 내밀기가 힘들어지기도 한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면 조금은 덜 외롭고 새로운 활동을 해 볼 용기도 생긴다. 책을 좋아한다면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는 일이 약간은 수월할 수 있다.


퇴직 전 갈망하던 자유의 시간이 외로움에 허덕이는 시간이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없지만 사부작사부작 혼자 잘 놀고 있다. 애호박 찌개도 끓이고, 파김치, 양파김치도 담아보고, 혼자 영화도 보고, 악기도 배우고, 영어 공부도 하고, 도통 재능이 없는 댄스도 배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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