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교장실

by 초코은


교장실에 호출이 들어온 건 방학식 삼일 후였다.


"박 선생 잘 쉬었어요"


"네, 그럭저럭이요"


평소 사람을 살피고 떠 보는 듯한 눈빛이 아니라 살짝 '어떡하나'하고 동정 어린 눈빛을 느낀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을 직감했다.


" A와 B 일에 무슨 일 있습니까? 교육청으로 자치대책위원회가 넘어간 것으로 알고..."


중간에 말을 자르는 교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냐.. 한 가지 물어볼 게 정확히 얘기해 줄 수 있죠? A의 수행 점수를 못 올려 준 이유가 뭐죠?"


"교장선생님 수행평가 계획 채점기준에 따라 채점했고 A의 어머니 항의가 있은 후, 원어민선생님과 동교가 협의를 다시 해서.."


" 2점 올려 주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다시 교과협의회를 한 협의록 결재까지 한 교장이 애써 침착하게 묻고 있는 것은 그 결과의 원인이 아니라 왜 이렇게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냐는 추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교장선생님, 무슨 일인지 정확히 알려 주십시오"

A엄마의 전화를 받을 때처럼 등에 땀이 배었지만 애써 침착하려고 단어를 골랐다.


"박 선생, 지금 교육청, 국민신문고에 민원이 들어갔어"


"이유가 뭔데요?"


" 공정하지 못한 평가, 그리고 담임이 B의 편을 들고 A를 왕따 시켰다고 하는데"


머리로 피가 솟아오르는 느낌에 잠시 눈앞이 흐려진다.


A와 B의 학교폭력자치대책위원회를 학교장 종결로 할지 교육청으로 올려 보낼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박 선생은 생활지도부, 교감, 교장에게 수없이 불려 가서 진술서를 썼고, A, B의 부모 전화를 시도 때도 없이 받느라 (일방적으로 퍼붓는 것을 들어주는 통화가 대부분이었지만) 6월 내내 시달렸다.


학교에서는 주로 담임으로서 관찰한 A와 B의 관계와 영어말하기 수행 과정에서 보인 A, B의 행동 등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진술했고 부모들의 격앙된 질문을 가장한 비난에는 "생활지도부에서 조사하고 있다" "학급에서 잘 관찰하고 살피겠다" "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 질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등의 대응을 했다.


그 통화에서 담임이 아니라 영어교사로서 평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나? 기억이 나지 않았고 왕따라는 단어의 주어가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에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무거웠다.


"제가 그 내용을 볼 수 있을까요?


"에이 뭘 봐"


애초에 보여주지 않을 거면 공정, 왕따라는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지 말았어야 한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박 선생, 내가 교장이 아니라 선배교사로 얘기하는 거야. 교사가 자존심만 내세우면 안 돼. 굽힐 땐 굽혀줘야 한다고"


박 선생을 가리키는 민원 내용은 정확한 단어로 던져 놓고 특유의 빙빙 돌리면서 상대방의 입에서 해결책이 나오게 만드는 교장의 화법에 정신이 번쩍 든다.


"저는 못합니다. "


"뭘 못해요?"


"전 잘못한 게 없습니다"


"그걸 누가 모르나"


"그런데 지금 교장선생님은 저보고 A엄마에게 사과하라고 합니다. 사과한다고 일이 끝나지 않을 거란 거,,"


교장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박 선생! 학교가 박 선생 하나만 있는 거 아냐. 학생을 생각하라고, 학생한테 사과하는 게 뭐가 어려워?"


"제가 A를 왕따 했다고요? 점수를 일부러 깎고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왜 사과를 해야 하죠?"


"사람이, 왜 이렇게 대쪽 같아. 누가 잘못했대? 그냥 도의상 담임으로 일이 이렇게 된 거 유감이다 이렇게 사과하면 되잖아"


계속해서 얘기해 봤자 결론도 나지 않고 박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러고 가면 어떻게 하라고 젊은 사람이 참.. 그리고 학교도 애쓰겠지만 이건 엄연히 박선생 학급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게. "


애써 태연하려고 했지만 등 뒤에 들려오는 박선생 학급 일이라는 소리에 교장실 문까지 걸어가는 데 잠시 핑 어지러워 몸이 기울어진다.


어디서부터 잘못 됐을까.


영어수행평가 점수에서 출발해서 난데없이 A와 B의 학고폭력, 방학 때 교육청에서 잘 마무리되면 어렵지만 2학기에 A와 B사이를 잘 수습해 보려 했는데, 그건 아주 순진한 희망이었다.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멈춰서 쳐다본 벽에는 제34회 학부모운영위원회라고 금색 신명조 글자가 박힌 벽시계가 걸려 있다.

A엄마가 학교운영위원인 것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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